말기 암과 만성 통증 환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만성 통증은 원인이 해결됐는데도 극심한 아픔이 끊이지 않는 질환이다. 그래서 '천형(天刑) 같은 통증에서 벗어난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하는 심정을 갖게 된다. 이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보다는 적극적인 통증 치료를 선호한다. 실제로 윤영호 국립암센터 박사팀이 국립암센터 등 17개 병원에서 암환자(1,242명)와 그 가족(1,289명), 암전문의(303명), 일반인(1,006명)을 조사한 결과, 90% 정도가 이 같은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지옥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 삶이 천당처럼 바뀐 사람들이 있다. 바로 패치형 마약성 진통제 덕분이다. 이들은 마약성 진통제를 권했던 의사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 비(非)마약성 진통제로는 통증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어 통증 신호 자체를 차단하는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비용 암의 10배나 돼
현재 국내 만성 통증 환자는 성인 인구의 10%(25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령 인구와 각종 만성 질환자 증가로 만성 통증 환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그러나 참는 게 미덕이라는 한국적 정서 때문에 환자는 꾀병을 부리거나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만성 통증은 집중력과 기억력 감소, 수면장애, 활동 범위 축소를 가져오고, 우울증도 동반한다. 따라서 직장 생활이나 여가 활동, 집안 일이 힘들어지고, 가족ㆍ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등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활동 결핍으로 인해 운동 저하나 근육 약화가 생기며, 심부정맥 혈전증이나 심근 허혈과 같은 혈류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극심한 통증으로 인한 수면장애는 2명 중 1명 꼴로 나타나며, 30%에 가까운 환자가 자살을 생각한다.
만성 통증은 환자 개인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부양비 의료비 지출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내에서 1998~2000년 만성 통증으로 인한 비용이 2조2,000억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달했다. 이는 같은 시기 암 비용(2,400억원)의 10배나 되며, 뇌혈관질환 비용(6,100억원)이나 고혈압 비용(2,900억원)보다 많다.
만성 통증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통증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통제 선택의 어려움이 주 원인이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가 주로 처방되는데 만성 통증은 이미 중추신경에 변화가 생긴 질환이어서 말초신경에만 작용하는 NSAIDs로는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다.
또한 위장장애 등 부작용이 많고, 장기 복용 시 심장질환이나 순환기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늘면서 장기 치료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 중독가능성 매우 낮아
마약성 진통제는 NSAIDs보다 통증 조절 효과가 뛰어나다. 하지만 '혹시 중독 되지 않을까', '평생 끊지 못하면 어떡하나' 등 불안감 때문에 처방을 주저한다. 중독은 쾌락을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행동장애다.
그러나 만성 통증 환자의 경우 뇌의 마약수용체가 현저히 줄어 있고, 쾌락을 느끼는 신경반응체계 일부가 차단돼 있기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로 쾌락을 느끼고 중독될 위험이 매우 적다. 최근에는 효과를 천천히 내는 서방형(徐放形) 형태나 며칠씩 효과가 지속되는 패치제 형태의 마약성 진통제가 쓰이면서 중독 가능성이 더욱 줄었다.
스리니바사 라자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미국통증학회에서 "3% 미만의 환자에게서만 약물 의존성이나 중독이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문동언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알코올 중독 등의 약물 남용 경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안심하고 써도 될 정도로 중독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마약이라는 이름도 선입견에 한 몫을 한다. 마약(痲藥)이라는 이름은 마취(痲醉) 작용이 있는 약(藥)이라는 한자에서 유래했지만 마법사 악마의 약이라는 마약(魔藥)으로 오인되고 있다. 결국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고, 결국 중독이 되는 '악마의 약'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환자가 약 사용을 꺼리고 있다.
환자의 92.6%가 만족해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척추질환에 따른 만성 통증 환자 1,037명을 대상으로 한국얀센의 '듀로제식 디트랜스'(펜타닐 성분의 서방형 패치제)의 임상을 진행한 결과, NSAIDs 등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도 평균 49%가 통증이 줄어들었다.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는 3.3%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92.6%가 마약성 진통제가 기존 치료보다 좋다고 답했고, 84.4%가 임상이 끝난 뒤에도 듀로제식 디트랜스를 투여받았다. 문 교수는 "효과를 느낀 대부분의 환자(92.6%)가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 사용하길 원했다는 것은 만성 통증에서 마약성 진통제가 매우 효과적 치료법임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임상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통증으로 인해 악화했던 일상생활 능력이 통증치료를 통해 회복됐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한국얀센의 '듀로제식 디트랜스'(한국얀센)와 '마트리펜'(대웅제약), '펜타맥스 패치'(한국산도스) 등이 나와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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