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거칠게 몰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선 불량한 느낌마저 배어난다. 누가 봐도 비호감에 반항적인 외모의 이 남자, 어느 날 밤 가녀린 젊은 여인을 살해한다. 인터넷으로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눈 사이인데 자신을 무시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르고도 그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평소처럼 일어나고, 별 일 있었냐는 듯 일을 한다. 천하의 악인이라 매섭게 비난해도 부정할 수 없는 행각들. 그러나 정말 그는 악으로 똘똘 뭉친, 뼈 속까지도 나쁜 인물일까.
일본영화 '악인'은 살인을 저지른 젊은 남자 유이치(츠마부키 사토시)와 주변인들을 통해 진짜 악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선과 악에 대한 인류의 오랜 의문을 품고 있으면서도 영화는 구태의연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포착하는 눈 밝은 카메라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탐색하며 과연 인간의 본 모습이란 무엇인가 되묻는다.
살인자 유이치의 일상은 모범적이다. 병든 조부와 생활능력이 떨어지는 조모에게 청춘을 저당 잡힌 듯하지만 불만을 일절 드러내지 않는다. 말수 적고 수줍은 성격의 그가 평소에 쌓인 불만과 욕구를 배출하는 곳은 인터넷 만남 사이트다. 그는 온라인으로 이어진 여인들과 몸을 섞으며 동물적인 본능과 음습한 욕망을 다스린다. 그는 죄의식이 부재한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영화는 오만불손하고 남자의 재력만을 따지는 피해 여성이 출구를 찾지 못하던 유이치의 분노를 자극해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말하려 한다.
영화는 유이치 주변 인물들의 여러 행동들을 보여주며 누군가를 악인으로 성급하게 단정하려는 것에 경계심을 드러낸다. 밤늦게 후미진 국도변에서 여성을 발로 차 하차시키는 부잣집 대학생,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시골 사람들에게 약을 강매하는 약장수, 어린 유이치를 버리고서도 그가 저지른 살인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엄마 등이 등장하는 장면은 사람의 악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것인가 되씹게 한다. 자기 딸만은 순수하고 착하다고 굳게 믿는 피해 여성의 아버지, 유이치의 결백에 집착하는 조모의 모습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삶의 이면에 진실이 감춰져 있음을 암시한다.
재일동포인 이상일 감독이 연출했다. '69 식스티 나인'(2004)과 '훌라걸스'(2006) 등으로 호평 받은 그는 여전히 세밀한 터치로 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전한다. 화면에 착 달라붙는 듯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탁월하다. 특히 살인자 유이치와 사랑에 빠지는 미츠요(후카츠 에리)의 천변만화하는 얼굴 표정은 이 영화의 최고 볼거리다. 그는 이 영화로 지난해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유이치와 미츠요의 도주 여행으로 거의 채워진 후반부는 다소 맥 빠진다. 유이치의 순수함,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 등을 투영하며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냐고 반문하기도 하는 이 대목은 지루한 멜로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전반부가 유이치의 행적을 좇는 차디찬 스릴러였다면 후반부는 절망적인 사랑에 빠진 남녀의 애달픈 러브스토리라 할 수 있다. 별개의 영화 두 편을 이어 붙인 듯한 구성이 아쉽다. 일본의 인기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소설을 옮겼다. 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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