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였던 핀란드의 자랑 '노키아'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투기 등급 직전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당한 데다, 미래 전망도 암울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극단적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가운데 하나인 영국의 피치사는 7일(현지시간) 올해 노키아의 장단기 성장 전망이 어둡다는 판단에 따라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내렸다고 밝혔다. 이는 투자적격 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 피치는 더욱이 향후 전망도 '부정적'으로 제시해 정크(투자부적격)로 떨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노키아의 비관적인 미래 전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삼성전자에 따라 잡힌 후 얼마 전에는 대만 휴대폰 제조업체 HTC에까지 덜미를 잡혔다.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도 피치에 앞서 이미 노키아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며 냉대했다.
승승장구해온 노키아의 역사를 보면 지금의 굴욕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1865년 핀란드의 한 시골에서 목재펄프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한 노키아는 고무, 전선, 컴퓨터, 텔레비전, 통신시스템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무분별한 확장 결과 1980년대 말 경영 위기를 맞게 됐다. 이때 사업부분을 대부분 매각하고 전혀 다른 업종인 휴대폰 제조회사로 변신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당시 위험천만해 보였던 그 결정은 90년대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는 발판이 되면서 노키아를 글로벌 정보통신 슈퍼기업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휴대폰 시장이 급변했으나 변신의 귀재 노키아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물론 2001년 '심비안' 운영체제(O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2007년 iOS를 사용하는 애플 아이폰의 공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최근 소니에릭슨 등 주요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심비안과 결별하고, 구글의 안드로이드 OS까지 가세하면 노키아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시장 점유율이 급락하면서 노키아의 박리다매 전략에도 제동이 걸렸다.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2007년 2분기 38%에서 지난해 말 30%까지 하락했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년도에 비해 26%나 떨어졌다.
노키아는 특단의 대책으로 지난 2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애플에 맞서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동맹을 맺는데 뒤늦게 나마 합류한 것. 노키아는 심비안OS도 미련 없이 버리고 MS OS로 바꿨고, 온라인 장터도 통합하기로 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평가다. 양사가 MS 플랫폼 공동 개발을 통해 새로운 스마트폰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출시 시점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노키아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노키아가 2분기에도 적자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자, 헬싱키 증시에서 주가가 1998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주당 4.75유로)로 폭락했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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