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못한… 확률 0.1%가 현실로
3월11일 발생한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을 덮친 것은 기록이 남아 있는 한 처음이다. 수백년에 한 번 일을 법한 일이 실제 일어난 결과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만5,200여명. 행방을 알 수 없는 이도 8,600명이 넘는다. 더군다나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폭발 사고로 막대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며 그 피해는 수백년 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10년전 미국 뉴욕 맨해튼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건물을 무너뜨린 9ㆍ11 테러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초강대국의 심장부를 공격한 이는 '소련'도 아닌, 외계인도 아닌 이슬람 테러 조직 알 카에다였다. 허드슨강이 내려다 보이는 WTC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비행기가 건물을 들이받는 바람에 비명횡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당시 희생자는 무려 5,000명이 넘었다.
우리나라에선 외환 위기가 그랬다. 아무도 상상해 본 적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 일이1997년12월3일 갑자기 닥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천사가 아니었다. IMF는 구제금융을 지원해 주긴 했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시켜줬다. 고금리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 알짜 기업들의 헐값 매각 등이 강요됐고, 이 때문에 무려 150만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평생 직장에서 쫓겨 난 이들은 하루 아침에 노숙자로 전락했다.
실제로 사람들의 삶과 세상의 모습을 바꿔 놓은 역사적 사건은 대부분 기존 경험으론 예측하기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발생 가능성 0.1%에 불과하나, 일단 일어나면 세상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이런 사건ㆍ사고들에 검은 백조, '블랙스완'(Black Swan)이란 표현이 붙여졌다. 미 뉴욕대 특훈교수이자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현자'로 불리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처음 명명한 이 말은 극단의 일들이 점점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21세기 지구촌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 키워드가 되고 있다.
18세기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기 전까지 백조는 모두 흰색이란 믿음이 의심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블랙스완의 발견은 이러한 고정 관념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수천년 동안 수백만 마리의 흰 백조를 보면서 견고히 다져진 이론이 검은 백조 한 마리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블랙스완 이론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칠면조 우화가 있다. 푸줏간 주인이 1,000일 동안 매일 맛있는 먹이를 주면서 정성껏 돌보자 칠면조는 주인이 자신을 끔찍이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1,001일째 되던 날 칠면조는 먹이가 아닌 식칼을 받는다. 추수감사절이 된 것이다.
탈레브는 바퀴의 발명,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비틀즈의 출현, 인터넷의 개발, 초대형 베스트셀러 의 성공 등을 블랙스완의 구체적 사례로 들었다. 일반적 기대 영역 밖의 극단값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극심한 충격을 주는 사건, 그러나 지나가고 나면 마치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일처럼 설명되는 것이 블랙스완 사건들의 속성이다.
전 세계가 점점 하나의 네트워크 아래 연결되고 미래 불확실성과 그 효과가 증폭되면서 이런 일은 점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과 세계화가 융합되면서 리스크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여러 변수 사이에 상호 의존성과 복잡성이 커지면서 블랙스완처럼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어느 날 갑자기 추수감사절 날 칠면조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1,001일째 되는 날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걸까. 한국일보 기자들이 한국일보 창간 57주년을 맞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블랙스완 현장들을 찾아갔다. 흥미로운 것은 1,001일째 되는 날이 칠면조에게는 뜻 밖의 참사가 일어난 블랙스완이었지만 푸줏간 주인에겐 블랙스완이 아니라 예정된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칠면조가 아닌 푸줏간 주인이 되는 길을 소개한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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