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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세계를 뒤흔들다/ 9 11 ,10년 후 그라운드 제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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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세계를 뒤흔들다/ 9 11 ,10년 후 그라운드 제로를 가다

입력
2011.06.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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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찾은 미 뉴욕 그라운드 제로는 여느 공사판과 다르지 않았다. 트럭이 쉴새 없이 드나들고, 대형 크레인이 하늘을 덮었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에 들어설 초고층 프리덤타워 빌딩은 제법 웅장한 골격을 드러냈다. 실종된 가족 친지를 찾는 애끓는 사연과 사진, 무슬림에 대한 섬뜩한 저주, 미국을 찬양하는 포스터 등 공사장 담벽을 빼곡히 채웠던 ‘9ㆍ11 의 기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비극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소방차 앞에서 대형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든 40대 여성의 고함이 발길을 잡았다. “유에스에이! 무슬림은 지하드! 미국은 아직 여기에 있다!” 조앤 아캐벌러(뉴저지 거주)라는 이 여성은 한국 기자라는 말에 “무슬림은 김정일보다 더 악독하다”고 독설을 쏟아냈다. 9ㆍ11로 조카를 잃었다는 그는 “모스크는 지하드 양성소”라며 “모스크가 많으면 세계는 그만큼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설립을 추진중인 모스크 센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모퉁이를 돌자 ‘101st airborne’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허버트 홀젠도프(66)가 공사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60년대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그는 “9ㆍ11 이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하자 “미군에 감사하고, 소방대원들에게 감사하고, 이슬람에 강한 입장을 보이는 미국정부에 감사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테러리스트와 대화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은 개자식(bull shit)”이라며 “오사마 빈 라덴을 잡은 것은 오바마가 아니라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 예산을 4배 이상 늘린 부시 전 대통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존 F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소련에 보여줬던 용기를 오바마 대통령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공사장 옆 뉴욕소방서 건물 벽에는 구조작업 중 숨진 343명의 대원을 기리는 추모비와 함께 ‘우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제목 아래 구조대원의 활약상을 그린 대형 동판이 설치돼 있다. 마크 앤서니(66)는 이 앞에서 행인들에게 당시 구조현장 사진 등을 보여주며 티셔츠 등 기념물을 판다. 뉴욕 소방대원으로 구조작업을 하다 호흡기질환을 얻어 3년 전 그만둔 그는 “빈 라덴이 죽었는데 어떠냐”는 질문에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또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중요하지 않다”며 좌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라운드 제로에 신축되는 프리덤타워의 공식 이름은 WTC 이름을 딴 ‘One World Trade Center’이다. 뉴욕에서 가장 높은 104층, 높이 546m로 건설될 이 빌딩은 2013년 완공예정으로 현재 66층 이상 골조공사가 이뤄졌다. 희생된 원혼을 잊으려는 듯 새 건물은 쑥쑥 올라가고 있었지만, 미국인의 상처와 아픔, 분열은 10년 전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라운드제로(뉴욕)=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 인터뷰 - 마이클 루빈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

보수성향의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의 마이클 루빈(사진) 연구원은 "9ㆍ11 테러는 미국이 지정학적으로 안전하다는 믿음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테러는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반발이기 때문에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9ㆍ11 테러 10주년이 다 되간다. 미국인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나.

"극적인 변화는 없다. 공항 검색대에서의 불편함과 보안제일주의 정도인데, 미국인의 안전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10년간의 대테러전에서 미국은 무엇을 얻고 잃었나.

"두 가지 안보 교훈을 얻었다. 아프가니스탄같은 실패한 국가는 테러가 은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라는 점, 따라서 이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재자와 현대적 무기가 만나는 곳에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정책이 반미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많으나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이 무슨 일을 하든 이를 비판하는 반미는 항상 있었다."

-9ㆍ11은 왜 일어났나. 이슬람에 대한 편견 때문인가.

"서방의 외교정책 때문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사악한 이념이 원인이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이 생기기 전부터 테러를 저질렀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의 메카를 폭격하는 미국의 B-1 폭격기와 미국의 TV 쇼 프로그램이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극단주의자들은 서방의 문명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타협은 가능하지 않다."

-빈 라덴의 죽음은 미국에 무슨 의미인가.

"빈 라덴 사살과 대테러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미군이 철수한다면 1989년 미국이 아프간을 포기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빈 라덴 사살이 테러의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란 지적이 있다.

"미국은 93년 뉴욕테러, 96년 사우디의 호바르 미군기지 폭탄테러, 2000년 예멘의 미 구축함 콜호 테러 등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다시 공격했다. 사람들은 극단주의 이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악화일로다.

"미-파키스탄의 긴밀한 관계는 회복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은 인도와 손잡고 파키스탄을 고립시켜야 한다. 그러면 파키스탄은 중국과 손을 잡을 것이다. 남아시아에서 신냉전이 시작될 것이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 무엇을 남겼나

미국은 이제 안전할까.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 이후 나오는 물음이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테러총책은 사라졌을지 모르나 테러를 낳은 씨앗은 여전하다.

9ㆍ11 이후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치렀다. 아프간에서 알 카에다를 비호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지금까지 아프간에서 2,000여명, 이라크에서 4,500여명의 미군이 숨졌다. 보안을 명분으로 불법감청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테러용의자에게는 물고문, 불법구금, 수면박탈 등 고문이 가해졌다. “관타나모 수감자에 대한 강압심문이 빈 라덴 사살로 이어졌다”며 “수감자에 대한 고문기법은 매우 가치있는 것”이라는 색스비 챔블리스 미 상원의원의 말은 법과 민의를 대변한다는 미 의회에서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미국이 ‘빈 라덴 이후’를 더 우려하는 건 알 카에다와 연계돼 있지 않은 미국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때문이다. 9ㆍ11 이후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폭력’을 목격한 이들은 알 카에다의 이념에 동조하며 ‘파괴를 통한 미국 개조’를 꿈꾼다. 전문가들은 빈 라덴이 남긴 ‘성공’으로 “미국으로 미국을 파괴한다”는 이념을 수립한 사실을 꼽는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데이비드 로스코프 초빙연구원은 “우리는 빈 라덴을 묻었을 뿐 그가 남긴 적대적 미국은 묻지 못했다”고 말했다.

점조직으로 흩어져 있는 세계 각지의 알 카에다와 이에 동조하는 수많은 잠재적 테러리스트, 테러소탕을 명분으로 사회를 짓누르는 법과 제도의 올가미는 9ㆍ11의 극복이 요원함을 보여준다.

뉴욕=황유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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