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뉴욕 유엔본부의 사무총장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한 지난달 31일(재선도전 내용은 추가인터뷰로 진행)에도 반 총장은 직전까지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차 유럽과 아프리카를 순방했고, 인터뷰가 끝난 다음에는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바로 로마로 떠났다. 분초를 쪼개 일정을 소화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 관계자는 "집무실에 계신 단 하루를 용케 잡아 반 총장의 시간을 뺏은 것은 큰 행운"이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이 어떤 자리인지, 또 북한 문제를 비롯한 국제현안, 유엔 개혁 등 굵직굵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뚜렷하게 밝혔다. 국내에서 대선후보로 거론된다는 질문에는 거칠다고 느껴질 정도로 단호하게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여론조사에서 나의 이름을 빼는 것이 사무총장인 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북한 식량지원 문제, 남북관계 등 미묘한 현안에 대해서도, 남북 당사국의 긴밀한 협의를 전제로 했지만, 한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해 '세계의 대통령'으로서의 인식의 폭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줬다.
김정일 만나 핵포기 설득 용의 있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도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 핵포기와 개혁ㆍ개방을 설득할 용의가 있습니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이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혀왔습니다. 북한은 저의 방문을 기본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입니다만, 구체적인 시기나 의제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현재 국제정치환경도 방문하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북한 핵문제 해결에 노력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
-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사전에 충족돼야 합니까.
"먼저 남북한이 양자관계를 진전시키고, 또 6자회담이라는 틀이 있으니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수순입니다. 흔히 모든 분쟁에 유엔이 개입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당사자간 얘기가 잘 안 된다든지, 당사자들의 요청이 있다든지, 또 긴급한 사안일 때 유엔과 사무총장이 개입합니다. 지금 6자회담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지만 틀이 있기 때문에 최대로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중국을 방문했고, 미국도 개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걸 지켜보면서 결정할 것입니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성사가 안되고 있고, 6자회담도 교착상태입니다. 사무총장께서 직접 선제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중재할 의향은.
"이 문제는 한국정부 지도자,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기회 있을 때마다 협의했습니다. 북한 측과도 교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긴장이 높아지고, 그래서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화와 교류를 굳게 신봉합니다. 기회를 봐서 도움이 되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용의가 있습니다. 다만 한국정부나 북한과 긴밀히 협의해야 합니다."
-북한 측과는 자주 만나십니까?
"여기(유엔 북한대표부) 북한 대사가 있고, 가끔 평양에서 차관급 대표들이 옵니다. 그럴 때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북한의 핵 포기를 압박하는 국제사회의 노력과 달리 중국은 북한은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중국 지도부를 만나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하도록 설득할 생각이 있습니까?
"중국 정부와는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합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만날 때마다 한반도 문제를 협의하고, 양제츠 외교부장,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과도 기회있을 때마다 만나 심도있게 얘기합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핵포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국도 국제사회와 맥을 같이 합니다. 중국이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제 생각에는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계속 하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반대하는 이유는.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중국도 레버리지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차원에서 중국이 북한과 계속 교류하고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로버트 킹 미 북한인권특사가 최근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미국의 식량지원이 가시화하고 있고,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만 강경한 대북기조를 유지하다가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놓치고, 국제사회의 기류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요.
"한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입니다. 대북관계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한국 정부가 고유하게 결정할 문제입니다. 북한 식량위기와 관련해서 유엔은 지난해에 이어 올 3월 세계식량계획(WFP), 유엔아동기금(UNICEF), 세계보건기구(WHO) 등 3개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식량위기로 600만명 이상이 영향을 받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지난 3년 동안 긴급재난구호기금을 통해 북한에 상당한 액수의 식량지원을 해왔습니다. 한반도 긴장상황,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등으로 국제사회의 반응이 상당히 부정적이어서 북한에 식량지원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엔은 정치ㆍ안보적 고려와는 별도로 인도적 위기상황 때는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미국도 킹 특사의 방북을 통해 안보나 정치적 고려와 무관하게 식량지원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WFP가 방북했을 때 북한 당국이 모니터링 등 유엔이 제시하는 여러 조건에 응하겠다고 했으니 국제사회도 여기에 응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국민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장기적으로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사무총장께서는 인권문제에 특히 관심과 열의를 쏟고 계십니다. 북한이 주민들의 인권을 탄압하면서 3대 세습을 꾀하고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까?
"어떤 나라의 정치권력 형태에 대해서는 언급할 입장이 아닙니다. 다만 북한 인권문제가 유엔총회와 유엔인권이사회에 매년 회부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나 인권이사회의 권고사항을 잘 이행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대선후보군에서 제발 이름 빼주기를
-여전히 정치권에서, 특히 야권에서 내년 대선 후보로 거론됩니다.
"벌써 두세차례 이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번에도 분명하게 전달하니 잘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세계 평화와 안정, 개발, 인권 측면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고 숭고합니다. 국제사회가 제가 이 역할을 잘 해오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먼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치권에서 제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사무총장의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안됩니다. 성공한 사무총장이 되기를 바란다면 제 이름은 거론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론조사에서 제 이름은 뺐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괴롭습니다. 한글로 된 여론조사 보도가 시시각각 영어로 번역돼서 전달됩니다. 회원국들이 혼란을 일으킵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밖에서 보는 한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한국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독재정권을 거쳐 한 세대만에 민주적으로 성숙하고 경제적으로 발달한 나라가 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많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얘기를 하는데 고무적입니다.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의 많은 정상들이 한국인 사무총장을 보면서 60년대에는 아프리카와 비슷하거나 더 못했던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비결이 뭐냐고 묻곤 합니다. 예를 들어 새마을 운동을 통해 사회를 바꾸겠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꽤 있습니다.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은 직접 저한테 새마을운동 관련 책을 보여주면서 '당신들이 한대로 하고 있다'고 하고요, 우간다의 대통령과 부통령도 새마을운동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만한 국제적 지위에 올랐고 인정을 받는 만큼 한국이 국제사회에 해야 할 책무도 큽니다. '우리도 힘든데 왜 남을 도와야 하느냐'고 하는데, 서방국가들도 국내적으로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20~30% 예산을 삭감하더라도 공적개발원조(ODA)는 그대로 둡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대표적입니다. 경제위기로 30% 이상 예산을 절감하면서도 0.7%의 대외지원기금은 그대로 지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미국 등 많은 정상들 앞에서 캐머런 총리를 칭찬했습니다. 한국도 국내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유엔의 ODA 목표치는 실질 국민총소득(GNI) 대비 0.7%인데, 한국 정부가 2015년까지 제시한 ODA 규모는 0.25%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업무계약, 재산공개 등 유엔 개선해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이 최근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2회 아프리카-인도 정상회의에서 유엔이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고 비판하庸?유엔의 개혁을 역설했습니다.
"모든 지구적 위기상황이나 지역분쟁을 해결하는데 유엔만큼 정통성을 갖고 있는 기구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엔도 제약이 있습니다. 192개 회원국의 컨센서스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이 때문에 정책결정 과정이 느립니다. 관료주의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 4년 반 동안 이를 뜯어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이제는 유엔의 일하는 문화를 많이 개선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유엔 사무차장보 이상 직원들은 1년에 한번 재산을 공개합니다. 유엔 65년 사상 처음입니다. 유엔의 모든 간부들이 저와 업무성과 계약을 합니다. 이것도 이제까지 없었던 일입니다. 최근에는 유엔 사무차장급을 단장으로 유엔개혁을 전담하는 '체인지 매니지먼트팀'을 구성했습니다. (개혁에) 상당히 가속도가 붙고 있는 중입니다. 유엔의 일하는 문화가 확 바뀌었습니다."
-유엔개혁 중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확대 문제가 최대 현안입니다.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 등 4개국은 자신이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유엔 창설 이후 65년 동안 세계가 많이 변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안보리는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대표성 있게 개혁돼야 합니다. 여기에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상임이사국이 돼야 하고, 누가 비상임이사국이 돼야 하나, 상임이사국이 되면 기간은 얼마로 하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합의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20년간 이 문제를 협의했는데 아무 진전이 없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텍스트를 갖고 협의하고 있는데,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기 때문에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재선되면 새천년목표 달성 급선무
-최근 사무총장 재선 도전을 밝혔습니다. 재선의 당위성을 회원국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생각입니까?
"사무총장으로서 보낸 지난 4년 반은 유엔과 국제사회에 큰 도전이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도 이뤘습니다. 미얀마, 아이티,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에 신속히 대응했고 수단, 소말리아, 콩고,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에도 평화의 씨를 뿌렸다고 생각합니다. 여성과 아동ㆍ난민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핵 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연임한다면 국제사회가 직면한 이런 문제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
-사무총장으로서 첫 임기를 돌아볼 때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2009년 1월 초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분쟁 당시 매일 몇 나라씩을 돌면서 정상들과의 셔틀외교를 통해 정전 합의를 이끌어 낸 뒤 처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올해 초 시작된 '아랍의 봄'을 목격하면서 국민의 뜻을 경청해야 한다고 관련국 지도자들에게 강조했고, 코트디부아르에서 5개월여의 어려운 과정을 겪은 끝에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 정권을 맡는 민주주의가 확립된 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이티 대지진 때 20만 명이 사망하고 도시 전체가 파괴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유엔 역사상 가장 많은 100여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희생당해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재선된다면 시급히 챙겨야 할 구체적인 현안은 무엇입니까.
"2015년까지 계획돼 있는 새천년개발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또 이를 넘어서는 포괄적이면서 지속가능한 개발 의제도 제시해야 합니다. 내년에 열리는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리우+20)에서도 성공적인 결과가 도출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랍 민주화 지원해야
-21세기에 해적이 준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소말리아 해적 퇴치에 나서고 있고, 한국 등 각 나라들도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유엔 차원에서 다국적군을 구성, 해적 소탕에 나설 계획은 없습니까?
"해적 소탕에 저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아주 화급한 문제입니다. 소말리아 해적문제는 종합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첫째는 해적을 물리적으로 소탕하는 것이고, 둘째는 소말리아의 정치ㆍ안보 정세가 법치주의를 회복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사회가 안정돼 해적들이 바다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게 근본적인 치유책입니다. 평화유지군 1만2,000명이 치안을 맡고 있고, 소말리아 정부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군인과 경찰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장관을 소말리아 해적 특사로 임명했고, 그 보고서가 안보리에서 채택됐습니다. 붙잡은 해적을 재판하는 문제도 아주 심각합니다. 어느 나라도 안 하려고 합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요. 탄자니아 케냐 셰이셸 세 나라에 자신들의 사법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가 직접 교섭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지원도 많이 해야 합니다."
-중동에서는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기독냄?이슬람교의 갈등(코란 소각, 그라운드제로 무슬림 사원 건설) 등 9ㆍ11로 인한 이념 갈등이 여전합니다. 이런 세계의 기류를 어떻게 보십니까.
"아랍의 봄은 한 세대에 한번 나오기 힘든 기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사람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60년대부터 시작한 우리의 민주화 투쟁이 결과적으로 80년대 후반 민주화로 이어졌습니다. 80년대 후반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도 전후 30년만에 나온 것입니다. G8 정상회의에서 이걸 많이 얘기했습니다. 특히 이집트, 튀니지처럼 1단계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반기문 사무총장 주요 약력
▦충북 음성 출생(1944) ▦서울대 외교학과(1970)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1985) ▦제3회 외무고시 합격(1970) ▦외무부 주미대사관 참사관 겸 총영사(1987) ▦외무부 미주국장(1990) ▦외무부 제1차관보(1996)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1996) ▦외교통상부 차관(2000) ▦유엔총회 의장비서실장(2001)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2003)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2004) ▦유엔 사무총장(2007)
인터뷰 : 유엔본부(뉴욕)=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 반총장 지구 50바퀴… 국제분쟁 해결사로
'지구 50바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4년 반 동안 출장을 다닌 거리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자리'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구촌 곳곳을 누볐다. 전쟁과 기아, 빈곤 등 유엔의 가치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달려갔다.
반 총장에 대한 초기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친미(親美) 성향에다 설득과 중재로 대변되는 그의 '조용한 외교' 스타일은 강대국의 눈치만 본다는 '우유부단'으로 비쳐졌다. 그 중에서도 인권침해 문제에 침묵한 일은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 미얀마 등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국가들에 변변한 성명하나 내지 못하는 반 총장을 일컬어 "어디에 숨어 있느냐"며 조롱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리더십은 올해 새롭게 조명 받기 시작했다. 신호탄은 튀니지 재스민 혁명이었다. 그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독재정권을 향해 "국민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을 가장 먼저 촉구했고, 리비아에 대한 유엔 차원의 군사 개입도 신속히 이끌어 냈다. 유엔 평화유지군을 동원, 로랑 그바그보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축출을 압박한 것도 그다.
반 총장이 '국제분쟁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자 반 총장 비판에 열을 올렸던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조차 "유엔 사무총장이 아랍 세계의 반발을 부를 수도 있는 민주주의의 결핍을 지적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반 총장의 행보가 갑자기 대담해진 것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는 재임 기간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 인류 보편 가치의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2008년 미얀마 군사정권이 최악의 사이클론 재해에도 불구, 국제구호단체의 활동을 봉쇄하자 반 총장은 군부와 담판을 벌여 이재민 50만명을 구조했다. 같은 해 국제 석유위기 때에는 압둘라 국왕을 설득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을 유도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150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세계 기후회의를 열어 청정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녹색 성장'은 이제 전 세계 국가들의 공동 화두가 됐다. AFP통신은 "반 총장이 기후변화 문제를 지구촌 최고 이슈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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