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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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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입력
2011.06.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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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의 고전 는 프랑스 혁명기의 궁정이 배경이다. 와 함께 유년기를, 와 함께 사춘기를 보냈다면 '유리 구두'에 대한 판타지를 얼마쯤 품고 있음직하다. 왕자도 공주도 아니면서 '마법의 성'에서 결혼식을 하고, 왕도 왕비도 아니면서 '캐슬'이나 '팰리스'에서 살고 있는 것도 그 판타지와 무관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첫 유럽 여행에서 나를 매료시킨 것도 '캐슬'과 '팰리스'였다. 이제는 박물관이 된 그 곳, 왕자와 공주가 착용했을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 앞에서,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한 '거울의 방'에서 잠시나마 그들이 되어 보는 일은 판타지의 클라이맥스였다.

궁전도 박물관도 발에 채이고 널린 곳이 유럽이지만, 그 판타지를 구체화시켜주던 아름다운 물건에 관한 한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을 손꼽을 만하다. 도자기, 유리, 패션과 장신구, 은제품, 금속미술, 가구, 조각, 판화, 사진 등, 세상의 모든 삶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450만 여 점의 유물이 2,000여 년의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

그 일부가 서울에 왔다.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 17ㆍ18세기 절대왕권을 중심으로 근대국가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고 종교개혁으로 인한 신ㆍ구교 대립과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의 '캐슬'과 '팰리스'. 그 권력과 예술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다.

메디치가의 예처럼 막강한 부와 권력의 비호를 받은 예술은 그 후원자의 권세와 영광을 유감없이 구가한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동방정교 등 당시 궁정 생활을 지배했던 종교적 장엄이 눈부시다. 성물(聖物)과 봉헌용 공예품만이 아니다. 갑옷과 총칼 등 무기조차 예외 없이 이 시기 예술의 최고 정점에 있다. 그러나 도자기와 가구, 실내 장식품,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은 패션과 장신구에 이르면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스민 그 화려함과 정교함에 그만 멀미가 날 지경이다.

달은 차면 기우는 법, 바로크의 어원이'찌그러진 진주'라던가.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를 존중하는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반기로 시작하여 자유와 낭만의 극치로 치닫던 바로크 로코코 미술이 왜 그들이 떠나왔던 고전주의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는지 새삼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밤 12시의 종소리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도 예술도 우리의 판타지도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일 게다.

박물관을 나오며 에 대해 잊고 있던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상기한다. 주인공 오스칼이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으로 치장한 사교계의 여인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 역사의 현장에서 귀족과 민중의 삶 사이에서 갈등했던 궁정 근위대의 무인이었다는 점, 어린 마음을 뒤흔들었던 앙드레와의 순애보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점이다.

원작자가 이케다 리요코(池田理代子), 일본인이라는 점도 시사적이다. 프랑스에서도 인기를 얻자 의 감독 자크 드미에 의해 이란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혹 유럽 문화에 대한 판타지로 열광했던 우리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아픈 역사이고 현실이었던 것도 패인이 아니었을까.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꿈. 그것이 판타지라면 예술은 그 판타지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힘, 신데렐라가 흘린 유리 구두 같은 것이라고 믿고 싶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이야기는 그 유리 구두에서 다시 시작되니 말이다.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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