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뭐니 뭐니 해도 쇠고기지." "무슨 말씀, 요즘엔 돼지고기가 더 비싸다는 걸 몰라요?"
캠퍼스 커플에 석사학위를 같은 지도교수 아래서 받았다. 졸업도 같은 해 했다. 다니는 직장도, 살고 있는 집도 같다. 하지만 하는 일이 다르다. 남자는 쇠고기를, 여자는 돼지고기를 연구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연구하는 고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사내 커플이 서로를 챙겨주지 못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 사내커플은 상대를 이기지 못해 안달이다.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김진형(43) 성필남(40ㆍ여) 부부 연구사.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같은 과(축산물이용과)에서 일하면서 각각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품질향상과 소비촉진 비법 경쟁을 벌였다. 이후 남편 김씨가 다른 부서(기획조정과)로 옮기면서 성과관리라는 업무가 추가되긴 했지만 큰 틀에서 직장과 가정의 식탁에서 '고기싸움'은 계속 되고 있다.
"맛에서 쇠고기를 따라올 고기가 어디 있나요."(남편) "돼지고기가 먹어도 살이 덜 찌고, 혈관 건강에도 좋다니까요."(아내)
쇠고기에 대한 남편 김씨의 사랑은 국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등심, 안심, 양지, 갈비, 목심 등의 10부위로 분할된 것을 다시 쪼개고 쪼개 39개 부위로 만들었다. 그는 "이름이 없으면 국거리용에 불과한 고깃덩어리에 이름을 붙이면 소비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구이용 고기로 거듭난다"며 "이름을 불러줬을 때 비로소 꽃이 된다는 김춘수 시인의 말이 여기에도 딱 들어맞는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설깃머릿살. 육회 아니면 국거리용으로 뭉뚱그려져 싼 값에 팔리던 소 뒷다리의 한 부위다. 2009년 김씨가 발굴해 이름을 붙으면서 구이용으로 거듭나 가격이 2.5배나 올랐다. 쇠고기의 부가가치를 올린 셈이다.
그는 "이름을 갖게 됨으로써 소비자들은 다른 부위에서 맛 볼 수 없는 담백한 맛을 볼 수 있고, 축산농가 소득도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쇠고기 부위 명명작업 외에도 육질이 입에 착 감기는 촉감을 극대화하는 방법, 질긴 부위를 연하게 먹는 방법, 사골을 쉽게 우려내는 방법 등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마누라한테 맡겨놨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그는 너스레까지 놓았다.
7개 부위로 나뉘는 돼지고기에 대한 부인 성씨의 사랑도 둘째라면 억울해 한다. 성씨는 "요즘 크게 오른 삼겹살을 제외하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찌개, 볶음 등 다양한 요리에 적용 가능하다"며 "햄, 소시지 등 육가공제품 재료 대부분이 돼지고기"라고 강조했다. 성씨는 110㎏짜리 돼지를 도축했을 때 나오는 9만원짜리 뒷다리(2개)를 100만원짜리 생햄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술을 지난해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소금에 저려 숙성시킨 뒤 썰어 날로 먹는 햄이다. 성씨는 "전국의 영농법인에 관련 기술을 무료로 보급하고 있는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쇠고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개발에 엄두도 내지 못했을 기술"이라고 웃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장원경 축산과학원장은 즐겁다. "부부가 무슨 상관입니까. 이런 싸움은 더 붙여야지요."
정민승 기자 m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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