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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저 생청(生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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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저 생청(生靑)!

입력
2011.06.08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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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덥석, 보내 주신 차를 받았습니다. 올해 햇차는 늦봄 냉해를 입은 뒤에 귀하게 얻은 향기와 맛인 것을 아는지라, 한 봉지의 차가 만들어지는 일이 어떤 노고인지도 아는지라 덥석 받고 오랫동안 미안했습니다. 님의 섬진강 같이 흐르는 우정이 있어 지리산 차를 좋은 친구보다 더 가까이 두고 살아 왔습니다. 긴 봄날 내내 차밭에 엎드려 지내던 등 굽은 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어린 찻잎 모가지를 툭툭 꺾는 일이 차향을 밝히는 탐욕이라 죽으면 분명 지옥행’이라 하시던 탄식도 기억합니다. 지난 세월에 제가 마신 차가 얼마나 많은 차의 모가지인가를 알기에 그 지옥행에 기꺼이 해동갑하여 따라나설 작정입니다. 차를 만드는 일이 찻잎을 따는 일뿐이라면 어찌 차에서 그런 맛이 나오겠습니까. 권형원 시인이 ‘푸른 기운을 죽여야 한다는/살청(殺靑)이라는 말이 놀라웠다’고 노래했듯이 그 살청의 시간을 보내야만 향이 생기고 맛을 얻습니다. 그를 알기에 천하의 다산(茶山) 선생도 당신의 아호에 차 다(茶)자를 제일 앞에 놓아두었을 것입니다. 푸른 찻잎을 덖고 찌는 일이 살청이지만, 차를 우려 그 잎을 다시 살려 내는 것을 저는 생청(生靑)이라 이름하고 싶습니다. 님이 죽여 보내 준 지리산 그 푸른빛을 살려 내어, 악양의 산그늘 깊어 서늘한 여름과 함께 제 곁에 두고 청학처럼 즐기겠습니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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