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측 쉽고 수입할 필요없고 공짜…바람, 현대에너지의 NO.1"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최근의 일본 원전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눈 앞의 값싸고 손쉬운 방법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덴마크와 독일은 '2050년 화석연료 제로(Zero)'를 선언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독일은 일본 원전 사태의 영향으로 최근 원전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 국가들의 계획과 도전, 그리고 실행가능성을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지난달 31일 찾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도로는 자전거로 넘쳐났다. 길에서는 사람보다 자전거가 먼저이며, "자동차 조심하세요"라는 말 대신 "버스에서 내릴 때 자전거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인다. 도로에서의 자전거 우대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한 덴마크 정부의 정책 중 하나다. 덴마크는 자동차 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자동차를 사면 25%를 부가가치세로, 180%를 등록세로 내야 해 차값보다 세금이 많다고 한다. 대신 자전거 이용이 활발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동차 값이 이처럼 비싸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별로 불평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삶의 질에서 세계 수위를 다툰다. 소득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무상의료ㆍ무료등록금 제도 등이 정착된 복지국가라서 비싼 전기값, 자동차 세금 등을 국민들이 당연히 받아들인다. 특히 1974년 겪은 오일쇼크로 자동차가 운행을 못하고 거리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일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화석연료를 가급적 적게 쓰는 정책에 호감을 갖게 됐다.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에 눈을 뜬 것도 이 무렵부터다.
덴마크 공대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권필석씨는 "1971년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설치했을 정도로 화석연료의 고갈과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오래 전부터 고민했던 국가"라고 설명했다.
덴마크가 오일 쇼크 이후 고민을 거듭하던 때에 신에너지의 돌파구는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덴마크 기업 베스타스가 1979년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풍력발전기를 개발해 생산하기 시작한 것. 현재 덴마크 전역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5,000여대. 이 발전기들은 지나가는 바람의 97%를 잡아내며, 덴마크에 필요한 전력의 20% 가량을 공급하고 있다.
풍력발전기가 처음 개발됐을 때부터 덴마크 정부는 발전기를 사면 정부 보조금을 지급했다. 당시 기름값이 상대적으로 쌌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풍력산업이 급속히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풍력발전기 점유율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베스타스는 3MW급 풍력발전기가 대세인 현재 상황에서 이미 6MW발전기 개발을 마쳤고, 7MW 발전기 개발도 계획하며 풍력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발전기 한 대의 높이는 땅속이나 바닷속에 설치된 '뿌리'부터 날개까지 총 180m에 이른다. 또 현재는 풍력으로 전력을 생산하려면 평균 초속 4~5m 이상으로 부는 바람이 필요한데, 향후 그보다 더 적은 바람으로도 전력 생산이 가능한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덴마크 란데르스(Randers) 지역에 있는 베스타스 본사에서 한국 기자들을 안내한 피터 벤즐 크루세(Peter Wenzel Kruse) 홍보담당 부사장은 "풍력 발전에 필요한 비용이 갈수록 줄고 있으며 2015년쯤이면 화석연료 발전비용과 거의 비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람은 (축적자료를 통해) 예측하기 쉽고, 수입할 필요가 없고, 또 공짜여서 (기술발전에 따라) 갈수록 비용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크루세 부사장 등 임직원들의 명함에는 '현대 에너지의 넘버원(No.1 in Modern Energy)', '바람, 그것은 우리에게 세계 자체입니다(Wind, It means the world to u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풍력에너지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1985년 덴마크 의회는 원자력의 영구 폐쇄에 합의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핵사고가 발생한 뒤 코펜하겐에서는 2만5,000명이 반핵 시위를 벌였고, 시민들의 오랜 요구에 마침내 정부가 움직인 것이다. 덴마크가 재생에너지 강국이라고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적 논란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선언,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76년 이후 20년간 경제가 70% 성장할 때 에너지 수요는 18%만 늘었고, 1990~2006년 경제가 40% 성장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4% 줄인 국가이니 이들의 목표를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덴마크는 산이 없는 평지 국가이고, 바람도 많아서 풍력 발전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과는 여건이 다르다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화석연료 매장량이 비교적 많고 원자력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었던 덴마크가, 정부의 정책적 결단이 없었다면 현재의 재생에너지 강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코펜하겐·란데르스=글·사진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한스 모겐센 에너지넷 홍보담당 부사장
덴마크 기후ㆍ에너지부 산하 에너지담당 공기업인 에너지넷의 한스 모겐센 홍보담당 부사장은 "향후 40년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50년 화석연료 사용 '제로(0)'를 달성하기 위한 각오를 밝힌 말이다.
지난 1일 덴마크 핀(Fyn) 섬에 있는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모겐센 부사장은 '화석연료 제로' 시대를 열기 위해 극복해야 할 3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바람이 없을 때 에너지 소비가 많을 경우의 전력공급, 둘째는 바람이 너무 많을 때 남는 전력의 활용법, 셋째는 위의 두 가지를 해결할 시스템을 만드는 방법이다. 결국 에너지 저장 문제와 관련된 것인데 이는 풍력뿐 아니라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가 가진 주요 과제이다. 사실 풍력이나 태양열로 완전히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력량으로만 따지고 보면 그렇다.
문제는 저장이다. 화석연료의 경우 전력 소비가 많은 시점에 발전을 많이 하는 식으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풍력이나 태양열은 그렇지 않다. 현재는 방대한 에너지를 한꺼번에 저장해서 꺼내 쓸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그때그때 쓰지 못하는 에너지는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덴마크는 풍력이 남아도는 시점에는 전력선을 이용해 주변국으로 에너지를 팔아서 낭비를 막고 있다.
모겐센 부사장은 "모든 분야의 발전시설을 총괄하고 조절하는 지능형전력시스템(Intelligent Power System)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명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바람이 적은 날은 풍력 대신 바이오매스 등의 다른 전력원에서 전력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발전시설 관리를 통합하는 것이다. 이미 덴마크 인구의 약 1%가 살고 있는 한 섬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범 실시되고 있다. 덴마크는 현재 20%대인 풍력을 우선 2020년 42%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어서 스마트 그리드 사업은 눈앞에 놓인 최대 과제가 됐다.
근본적으로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자체를 저장하는 기술, 또는 몇 시간 동안 전력이 공급되지 않아도 작동하는 가전제품을 개발하는 기술, 혹은 전기자동차에서 쓰고 남은 배터리 등을 집으로 가져와 전력으로 쓸 수 있는 기술 등이 발달해야 한다. 모겐센 부사장은 "40년 후면 충분히 이런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고 낙관했다.
핀=글·사진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국내 실태는…발전량 기준 재생에너지 비율 1.07% 불과
국내에서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재생에너지는 모두 8가지다. 태양열, 태양광, 바이오, 풍력, 수력, 지열, 해양, 폐기물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간주한다. 이 가운데 산업폐기물을 소각해 이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활용하는 폐기물에너지의 비중이 가장 높다. 2009년 기준으로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량의 74.89%를 차지한다. 이어 수력(9.97%), 바이오에너지(9.54%) 순인데 이 3가지 에너지가 전체 재생에너지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순수한 재생에너지'로 볼 수 있는 풍력(2.42%), 태양광(2.00%), 태양열(0.50%), 지열(0.36%) 등은 2% 내외에 불과하다.
전체 발전량을 기준으로 보면 재생에너지의 비율은 극미한 수준이다. 2009년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량은 461만7,886MWh였는데 이는 그 해 전체발전량(4억3,360만745MWh)의 1.07%수준이었다. 그 중 수력(전체발전량의 0.65%)이 절반 이상이었다. 풍력은 전체발전량의 0.16%, 태양광은 0.13%, 매립지가스는 0.10% 였다. 수력발전을 제외하면 국내 재생에너지 가운데 발전량의 0.5% 이상을 담당하는 재생에너지가 아직 없다는 얘기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우리와 기후 및 자연환경이 비슷한 일본만 해도 2020년까지 전체 전력량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우리는 2030년까지 목표치가 10~11%밖에 안 된다"며 "재생에너지의 사용을 당위의 문제로 보고 에너지 정책을 마련하는 선진국과 달리 '원전'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에 안주한 정책 담당자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