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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광복군' 김준엽 前 고려대 총장 별세/ 독립투사로 꼿꼿한 학자로 평생 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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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광복군' 김준엽 前 고려대 총장 별세/ 독립투사로 꼿꼿한 학자로 평생 한길

입력
2011.06.0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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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광복군' 김준엽 前 고려대 총장 별세평생의 동지 장준하 만나 학도병 탈출, 광복군으로총리 등 12차례 제안에도 선비로서의 삶 신조 지켜총장 사임 후 낸 회고록서 "난 무엇을 했나 늘 반성"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은 지조 있는 지식인의 표상이다. 한 번도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오롯이 실천해 낸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무장항일운동은 이런 인생의 출발이었다. 1944년 그는 일본 게이오(慶應)대 동양사학과 재학 중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평생의 동지인 장준하(1918~75) 선생도 일본 도요(東洋)대 재학 중 같이 학도병이 됐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학도병을 탈출해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重慶)으로 가 광복군이 됐다. 김 전 총장은 지청천 광복군 총사령관, 이범석 광복군 2지대장 등의 부관을 지냈고, 장 선생도 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정도로 두 사람의 공로는 혁혁했다. 광복군에서 생사를 함께한 두 사람은 광복 후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형 동생하며 막역하게 지냈다. 김 전 총장이 자유당 독재 당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일을 하면서도 장 선생이 창간하고 한국 지성사의 획을 그었던 사상계의 주간을 맡았던 것도 이런 인연과 무관치 않다. 두 사람은 당시 사상계 동료들과 암울한 현실을 토론하며 기막힌 심정을 달랬다고 한다.

김 전 총장은 광복 후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과 공산주의 연구에 몰두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80년대 후반 이래 베이징(北京)대 등 중국의 11개 대학에 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해 한국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중국 내 임시정부청사 복원 운동에 참여해 항저우(杭州) 충칭 상하이(上海) 등 임시정부 유적 복원을 위해 진력했다.

특히 김 전 총장은 광복 직후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종 관료직을 12차례나 제안 받았지만 꼿꼿하게 학자의 길만 걸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계속된 정치참여 요구를 뿌리친 대신, 그가 한 일은 국가의 정신적 기틀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헌법 개정 때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헌법 전문에 명시케 하고, 민족 정기 양양을 위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 봉환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건의해 관철시킨 게 대표적이다. 그는 회고록에서“아흔 나이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관료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학자로서 살겠다는 삶의 신조를 지켰을 뿐이다. 나 자신의 지사적 지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백규(조선 후기 학자)의 양심적 기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학자다”고 밝혔다. 또 고려대 총장 시절 총학생회 간부를 제적하라는 전두환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저항정신으로 인해 1985년 결국 총장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사임 후 회고록 집필을 시작해 4년 만에 4권의 회고록을 냈는데 이처럼 짧은 기간에 회고록을 쓸 수 있었던 힘은 “군사정권의 탄압에 대한 분노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5권짜리 을 발간했다. 이 회고록은 1, 2권이 광복군 시절, 3권이 고려대 총장 시절, 4권이 무직 시절을 담고 있다. 90년 4권 발간 후 11년 만에 발간된 5권에서는 49∼82년의 평교수 시절과 88년 사회과학원 설립 후의 시기를 정리했다. 그는 5권 머리말에서 “망국의 쓰라림과 민족 해방 투쟁, 6ㆍ25전쟁, 그리고 이런 역경을 딛고 새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를 늘 반성하며 살아 왔다”고 밝히고 있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민족의 위기국면에서 언제나 한결 같았던 그의 심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정원 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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