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우연히 장준하의 를 읽고서였다. 이미 의문의 실족사로 장준하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는 감동과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의 목숨 건 탈출, 상하이 임시정부를 향한 그 머나먼 중국 장정, 그리고 광복군으로서 독립운동과 해방공간에서의 좌절의 이야기가 큰 바위가 돼 머리를 쳤다. 미처 세상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고교생에게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를 가르쳐 주었고, 참다운 가치와 용기와 애국심을 일깨웠으며, 누가 진정한 영웅들이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 영웅에게는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가야 할 길이면 목숨 걸고 가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가지 않는다. 김준엽은 가야 할 길에서 단 한 번도 주저한 적이 없었다. 1920년 평북 강계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게이오대 동양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1944년 학병으로 입대한다. 끌려간 게 아니라 자원이었다. 십중팔구 중국전선에 배치될 것이고, 그러면 임시정부와 독립군이 있는 곳으로 탈출해 독립운동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입대 두 달 후 그는 탈출했고, 6,000리 대장정 끝에 장준하와 함께 광복군에 합류했다.
■ 조선의 아들이라면 독립운동은 당연하며, 독립은 말로만 되지 않고 행동으로 해야 한다며 시작한 그의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의 은 평생 흔들림이 없었다. 일제 치하에서는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역사가와 교육자로 살면서 그는 친일의 청산으로 민족의 정신과 역사를 바로 세우려 했고, 사회 정의와 대학의 학문의 자유를 훼손하려는 독재정권에 맞섰다. 그 때문에 1985년 전두환 정권의 압력으로 고려대 총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선과 정의와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현실에 연연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살았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벼슬의 유혹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도 그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총리직을 포함한 10여 번의 관직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벼슬을 하지 않는다"는 일생의 신조를 그는 꿋꿋하게 지켰다. 어제까지 정부를 비판하다 장관 자리를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독재정권에 참여하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 하지 않고 정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양심의 길'을 걸었으면서도 "나는 과연 무엇을 했나 늘 반성하며 살아왔다"는 그가 7일 타계했다. 우리는 또 한 분의 참 영웅, 지성을 잃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