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거점인 서원과 향교는 향리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자 유교 성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향교가 유림이 운영하는 공립학교라면, 서원은 문중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다. 현재 남한 전역의 향교는 234개, 서원은 700여 개가 남아 있다. 서원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로 27개만 남았던 것을 해방 후 복원해서 이만큼 된다. 서원이 대원군의 철퇴를 맞은 것은 당쟁과 민폐의 뿌리가 됐기 때문이다.
전국의 향교와 서원 대표 500여명이 3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서원과 향교의 활성화 방안을 놓고 토론회를 가졌다. 죽은 전통이 아니라 유교 문화의 귀중한 유산으로서 오늘에 맞게 살리는 방안을 논의했다. 2006년부터 이 주제를 연구해 온 경기문화재단과 과천향교가 주최했다.
오늘날 서원과 향교는 한자나 예절 교육 등에 일부 쓰일 뿐 대부분 방치된 상태다. 나이 많은 유림들이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유교 성현의 제사나 지내는 곳쯤으로 통한다. 특히 문중 재산인 서원은 평소 문을 닫아 두기 때문에 더 멀게 느껴진다.
3일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자들은 문화콘텐츠이자 관광 자원으로서 서원과 향교의 가치를 주목했다. 박성진 유교신문 주간은 단순한 보존에서 적극적 활용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교와 서원에서 템플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육 내용도 각 향교와 서원이 배출한 인물과 역사에 대한 공부나 관련 유적 답사, 유림과의 대화 등으로 다양하게 할 것을 제안했다. 유교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향음례 향사례 같은 새로운 의례를 해 볼 것도 제안했다. 향음례는 성년이 되는 청년에게 술 마시는 예법을 가르치는 의식이고, 향사례는 선비들의 필수 교양 중 하나였던 활 쏘기 대회다.
드물지만 비교적 잘 활용 중인 예가 없지는 않다. 경북 안동시의 도산서원과 영주시 소수서원은 선비 문화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자리잡았고, 청주향교도 선비학당 어린이집 예절교실 등으로 지역사회에 파고들었다.
문제는 돈과 사람이다. 서원과 향교는 대개 문화재로 지정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지ㆍ보수비를 지원 받지만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할 여력은 없다. 전통만 강조했지 시대 변화에는 둔감한 유림의 고루함도 걸림돌이다.
이흥재 추계예대 교수는 서원과 향교를 지역 문화센터 또는 관광 거점으로 삼자고 제안하면서 지자체와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그는 “유교의 인본주의 전통은 물질문명에 치여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소중한 처방이 될 수 있다”며 “향교와 서원은 지역공동체를 살리고 현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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