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고양이 소 말 사슴 멧돼지 토끼 두더쥐 쥐 오리 까마귀 호랑지빠귀 새매 상어 도미 농어 광어 복어 항아리 병 금속그릇 나무빗 뒤꽂이 나무두레박, 그리고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의 전신 뼈….
이 많은 것들이 9세기 통일신라의 우물에서 나왔다. 1998년과 2000년 신라의 왕궁인 월성 남동쪽에서 찾아낸 2개의 우물 속에 들어 있던 것이다. 우물을 팔 때 지진구(지신에게 바치는 제의 용구)로 넣은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를 맨 밑에 넣고, 그 위로 각종 동물 뼈와 토기, 생활 유물 등이 뒤죽박죽 섞인 층을 정(井)자형 상석으로 막은 다음 우물의 나머지 윗부분은 자갈과 흙으로 메운 형태였다.
어린아이 뼈는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에서 발굴된 우물 1에서 나왔다. 깊이 10m 우물의 8.5m 지점에 두개골이 함몰된 채 거꾸로 처박혔고, 어린아이 주변과 아래는 동물 뼈와 토기 등이 뒤섞여 있었다. 우물 1의 동물 뼛조각은 2,100여점이나 됐다. ‘남궁지인(南宮之印)’이라고 도장이 박힌 기와 조각도 발견됐다. 98년 발굴된 우물 2는 동물 뼈가 우물 1보다 적은 반면, 토기 기와류 금속그릇 숟가락 뒤쪽이 나무빗 나무두레박 등 생활 유물 460여점이 나왔다.
고대 우물에서 동물 뼈가 이처럼 많이 다양하게 나온 예는 없다. 이 동물들은 왜 우물에 빠졌을까. 그리고 어린아이는 왜 그 안에 처박힌 것일까.
국립경주박물관에서 8일 시작하는 ‘우물에 빠진 통일신라 동물들’특별전은 1200년 전통일신라 우물의 수수께끼를 푸는 흥미로운 전시다. 어린아이 인골을 포함해 두 우물에서 나온 것들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다. 조사보고서는 진작에 냈지만 전시는 처음이다.
학자들은 이 두 우물에서 나온 동물과 유물들이 특별한 제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어린아이도 제물로 던져졌을 것으로 본다. 실수로 빠져 죽었다면 건져 냈을 것이고, 죽은 아이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면 높은 신분의 아이였을 텐데 당시 귀족급 이상의 무덤인 석실분에 묻지 우물을 무덤으로 쓸 리가 없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제사 음식이거나 제사에 바친 희생물이었을 것으로 본다. 물에 빠져 죽을 일이 거의 없는 고양이 뼈가 5마리분이나 되고, 4등분한 소의 갈비뼈, 주둥이 부분만 깨끗이 떼어 낸 토기 병들이 나온 것도 우물 제사를 지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국립경주박물관의 학예연구사 김현희씨는 “동물 뼈는 신라 왕궁인 월성 주변 우물에서 많이 나오고 경북 경주시의 다른 지역에서는 소량만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개인이 아닌 왕실 차원에서 대규모 우물 제사를 지냈을 가능성이 크다”며 “신성한 우물을 골라 나라의 평화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낸 뒤 우물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우물은 본래 여자들의 공간이고, 여자들의 액세서리인 뒤꽂이나 머리빗이 나온 것으로 보아 여성 중심으로 우물 제사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우물가에서 벌어진 제의의 구체적 형태나 과정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다는 옛 기록이나 이를 확인할 국내 다른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에밀레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 신종을 만들 때 어린아이를 집어넣었다는 전설은, 종의 성분 분석 결과 인골 성분인 인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이번 전시는 동물고고학의 성과를 보여 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1200년 전 고대 한반도에 살았던 동물들을 볼 기회다. 두 우물에서 나온 뼛조각을 맞춰서 어떤 동물인지 알아내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개와 고양이는 전신이 거의 온전하게 나와 복원을 했다. 그 중 개는 복제품을 전시한다. 이 개는 길이 108cn, 키 53cm로 고대 한반도 유적에서 나온 개 중 가장 크다. 고양이는 야생종으로 확인됐다. 그때만 해도 집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는 뜻일까.
고고 유적에서 나온 동물을 역사와 연결해 연구하는 동물고고학은 당시 인간의 식생활이나 경제활동을 아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동물이 병에 걸렸던 흔적을 역추적하면 당시 기후나 생태를 파악할 수도 있다.
전시는 8월 21일까지 한다. 문의 (054)740_750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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