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밤은 너무나 뜨거웠다. 오후 8시에 시작, 1부 (50분)_휴식(20분)_2부(50분)으로 해서 10시면 끝나기로 돼 있었던 공연이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은 10시40분. 절대 앵콜을 받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철칙을 깬 것이다.
그럼에도 모자랐다. 키스 자레트(66)의 ‘솔로 피아노 즉흥의 밤’. 지난해 같은 곳에서의 첫 내한 공연에서 받은 한국의 뜨거운 환대를 못 잊어 다시 찾은 한국이다.
그는 등장할 때 만원의 객석에 크게 절했다. 이른바 조폭 인사와 합장이었다. 이어 그는 의자에 앉아 고개 한 번 푹 수그린 후 곧 연주를 시작했다. 그것은 조지 윈스턴이나 미셸 페트뤼시아니 등 재즈 어법을 중심으로 한 피아니스트의 내한 독주회와는 달랐다.
5음계를 위주로 한 서정성, 드뷔시를 연상케 하는 인상주의적 선율 등은 클래식적 면모가 발휘된 결과였다. 특히 왼손과 오른손이 엄격한 대위법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악상을 전개하는 대목에서는 악보를 벗어난 클래식의 가능성을 얼핏 떠올리게 했다.
그 같은 포스트모던적 양상은 자레트에게 빙산의 일각이었다. 미국 음악의 민중적 요소가 자레트라는 용광로에서 융해, 재탄생하고 있었다. 흑인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홍키통크나 셔플 등 대중음악적 요소는 그의 연주에서 시종 확인됐다. 현란한 선율에 다양한 박자가 짝을 이뤘다. 그를 만나 피아노는 타악기로 변신했다. 아프리카나 라틴 리듬, 연속 난사되는 고속의 셋잇단음 등은 피아노를 또 다른 지평으로 올려놓았다. 운동화를 신은 발까지 리듬을 구사하고 있었다.
피아노에 대한 기존 관념을 해체한 연주였으니만큼 객석의 반응도 평소와 달랐다. 단추를 목 밑까지 채우고 듣는 클래식 관객일지라도 공연 도중 나오는 기침은 못 참는 법이다. 그그러나 이날 공연 중에는 기침 소리가 놀랍게도 없었다. 라이브 음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덮개를 활짝 연 스타인웨이 피아노 속으로 세 대의 녹음용 마이크가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객석 곳곳에도 마이크 설치돼 있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선명하다. 1975년의 솔로 라이브 앨범 ‘쾰른 콘서트’가 지난해 그래미의 명예의전당에 추서됐듯, 이번 서울 공연의 라이브 음반도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평가를 획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고음악 전문가이기도 한 자레트는 다음 내한에서는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 같은 바로크 악기 앞에 앉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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