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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로션의 테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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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시로 여는 아침] 로션의 테두리

입력
2011.06.07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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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진

로션을 바르다가 나는 시작된다. 이것을 내 체취라고 생각하면 머릿속은 새하얘져서

네가 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소리가 쏟아지지 않게

인사를 한 만큼 얼굴은 당겨졌다가 견고하게 어디론가. 베개에서 겨우 손을 놓은 냄새가 맡아지기 전에.

맹세와 다른 체취를 맡아 본 적이 없게

내 답은 겨우 문을 열었다 닫지만. 내 불안이 가본 적 없는 곳을 지나간 곳으로 만들기 전에.

도착을 거부하고 있다. 용서가 잊었던 용서를 생생하게 겪게

● 헤겔은 현대인들이 아침 기도 대용으로 신문을 읽는다고 표현했었죠. 그럼 아침마다 로션을 바르는 건 이마에 성수를 적시는 의례 대신이겠네요. 어린 시절의 사탕 맛을 못 잊어서 아직도 달착한 블루베리 로션이 좋아요. 로션 뚜껑을 막 열었을 때와 똑같은 향기가 얼굴에서 난다면 늘 안심일 텐데… 잔뜩 발라도 냄새는 멀리 달아나요. 로션 향기의 테두리는 점점 넓게 퍼지고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은 잠에서 막 깼을 때 나던 체취가 짙게 배어 나옵니다.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생생한 체취를 맡을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이 불평해요. 뭐야 내가 아침에 맡은 너의 맹세와 다르잖아.

그런 말은 말아 줘요. 난 지금 내 소리와 냄새가 가득 담긴 곳의 문을 열었던 거라구요. 아침에 발랐던 것과 똑같은 냄새로 도착할 수는 없어요. 저녁 무렵의 당신에게 볼멘소리를 해 봅니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부디 내 존재를 용서해 줘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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