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의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가 엇갈린 성적을 내고 있다. 전 정권에 대한 로비 의혹 수사는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현 정권 부분은 조금씩이나 진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 차이는 바로 로비스트의 '입'에서 비롯되고 있다.
참여정부 로비 의혹 수사 지지부진
부산저축은행이 전 정권 때 로비스트로 활용했다고 검찰이 지목하고 있는 인물은 박형선(59ㆍ구속) 해동건설 회장이다. 부산저축은행의 2대 주주인 박씨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던 인물로 호남지역에 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2003년 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광주를 방문했을 때, 당시 광주YMCA 소속 시민운동가였던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맞이했던 멤버들 중 한 명이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박씨에 대해 '노사모 회원' '친노그룹의 숨은 후원자'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해동건설이 급성장했고, 부산저축은행이 업계 1위로 올라섰다는 점도 검찰이 박 회장과 참여정부의 유착관계를 의심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해동건설은 부산저축은행이 특수목적법인(SPC) 9개를 통해 831억원대의 불법 대출금을 쏟아부었던 경기 시흥시 영각사 납골당 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해동건설은 또 2009년 캄보디아 현지법인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은 박씨가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개발사업(사업비 5,000억원대)에 개입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박씨는 현재 "로비와는 무관하다"며 아예 입을 닫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검찰이 특정지역 학맥(광주제일고)을 고리 삼아 수사를 확대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박씨의 입을 열지 못한다면 전 정권 로비 수사는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MB정부 인사들 거명… 박태규가 핵폭탄
이와 달리 지난달 19일 구속된 금융브로커 윤여성(56)씨는 이미 자신이 벌인 로비 일부를 검찰 조사과정에서 진술하고 있다. 은진수(50ㆍ구속) 전 감사원 감사위원, 정선태 법제처장의 이름이 이 과정에서 나왔다. 윤씨가 일단 입을 연 이상, 검찰은 그의 또 다른 로비 활동에 대한 진술도 확보했을 개연성이 크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로 밝혀진 윤씨의 정ㆍ관계 로비는 주로 지난해에 이뤄졌다. 윤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검찰 수사망은 아무래도 현 정권 쪽으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윤씨는 부산저축은행이 벌인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큰 6,000억원대의 인천 효성지구 도시개발사업 인허가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추가로 비리에 연루된 여권 인사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그러나 현 정권 로비 수사에 있어 최대 뇌관은 역시 검찰의 수사 착수 직후 캐나다로 달아난 브로커 박태규(72)씨다. 정치권과 언론계의 마당발로 통했던 박씨는 원래 부산저축은행그룹과는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았으나, 지난해 퇴출 위기에 몰린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김양(59ㆍ구속기소) 부회장이 긴급 소방수로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브로커 윤씨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거물'을 전담한 로비스트가 바로 박씨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박씨는 지난해 6월 이 은행이 포스텍과 삼성꿈나무장학재단에서 각각 500억원씩을 투자받아 유상증자를 성사시켰을 때, 유력 정치인을 접촉하는 등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 시기 박씨의 통화 내역을 분석한 결과, 여야 국회의원 4~5명, 여권 인사 2~3명과 집중 통화한 정황도 이미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와 친분이 있는 정치권 인사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민주당은 청와대 김두우 기획관리실장, 이동관 전 홍보수석 등 언론인 출신 청와대 인사들이 접촉 창구가 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박씨가 성공보수 6억원, 로비자금 수십억원을 받아 갔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 그야말로 박씨의 입은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검찰이 박씨를 조사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진정한 '부산저축은행 게이트' 정국은 박씨가 귀국한 이후에야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형편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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