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넘게 이어진 국민과 국제사회의 하야 압력에도 꿋꿋이 버티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마침내 고국을 떠났다. 반정부 부족의 공격으로 다친 몸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를 계기로 그의 퇴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많아 33년 1인 독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관계자의 말을 빌려 "살레 대통령을 태운 항공기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 인근 킹 칼리드 공군기지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그의 가족들도 함께였다. 전날 사나 대통령궁 내 이슬람사원에는 예멘 최대 부족인 하시드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로켓포 공격이 가해져 살레 대통령의 경호원 등 11명이 사망했다.
장기화한 반정부 시위 끝에 하시드 부족이 정부군과 전투을 벌이며 예멘의 정정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살레의 부재는 권력 이양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정치학자 압델칼레크 압달라 교수는 "(살레 대통령이) 건강을 구실로 떠난 것은 최고의 출구전략"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방송은 "압드 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부통령이 대통령 직무대행 및 군 최고사령관직을 넘겨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국도 예멘의 사태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디 부통령은 5일 제럴드 파이어스타인 예멘 주재 미국대사를 만났고, 전날에는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 담당 보좌관과 전화통화를 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예멘 정부 사이에 이미 '포스트 살레' 시대에 대비한 모종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예멘 내에서는 살레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5일 사나 거리로 뛰쳐 나온 수만명의 시민은 "예멘은 새롭게 태어났다. 독재정권은 몰락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모하케드 카탄 야권 대변인은 "살레의 귀국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살레의 장남 아흐메드가 여전히 예멘에 남아 최정예 부대인 공화국수비대를 이끌고 있고, 보안ㆍ정보 기관을 장악한 살레의 조카 3명도 건재하다. 구 정권에 맞설 야권의 구심점이 마땅히 없다는 점도 예멘 민주화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5일에도 남부 타이즈에서는 부족 세력과 살레 친위부대 간 교전으로 5명이 숨지는 등 무력 충돌이 되풀이됐다. 로이터는 "살레 장남과 조카들이 사우디로 향하는 순간 장기독재는 막을 내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살레 대통령의 부상정도에 대해 영국 BBC방송은 "살레가 스스로 항공기에서 걸어 내려 왔지만 얼굴과 목, 머리 등에 부상 흔적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그는 심장 아래 부위에 7.6㎝의 포탄 파편을 맞았고, 가슴과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살레 대통령은 사우디에 도착하자마자 군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정밀 검사 후 파편 제거 등 외과수술을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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