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아, 잘 있었지? 우리 아들 간 봄은 그렇게도 춥더니 벌써 6월이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은 고 박정훈 병장의 어머니 이연화(49)씨는 아들의 묘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평소 목이 매어 가슴 깊숙이 묻어만 두었던 아들의 이름 석자를 보고 있자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박 병장은 제대를 꼭 1년 앞둔 지난해 3월 고인이 됐다. 이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붙이를 먼저 하늘로 보낸 심정은 더 원통하고 가슴이 먹먹하기만 해요"라고 말했다.
역시 묘역을 찾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꾹꾹 찍어내던 고 박보람 중사 어머니 박명이(49)씨도 "그저 먹먹하기만 하겠어요? 아들 보내고 겪은 일, 든 생각을 글로 모두 써 보라고 한다면 책을 몇 권 내도 부족하지…"라며 붉어진 눈시울을 훔쳐냈다.
이날 천안함 46용사의 유족들은 아침 일찍부터 묘역으로 모여들었다. 6일 현충일 행사에 참석하기 전 천안함 용사들만을 위한 간소한 합동참배를 올리기 위해서다.
30여 가족이 넘게 모이자, 가족들은 묘역 앞에 미리 마련해온 떡, 참외 등을 정성스럽게 차리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놓인 종이컵 46개에 주스도 따르고, 나무젓가락도 46개를 꼭 맞게 새어 놓았다. 고인들을 애도하는 묵념이 시작되자 가족들은 저마다의 상처로 깊게 패인 가슴을 움켜쥔 채 흐느꼈다.
이연화씨는 "그저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것이지, 천안함 피격이 1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정신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그나마 평택에서 함께 아들이 살아 있을 것으로 믿고 기다렸던 다른 유가족들이 지금으로선 가장 의지가 되고 애틋한 존재"라고 말했다.
세간의 모난 말도 유가족들의 가슴에는 가시로 박혔다. 고 조진영 중사 어머니 박정자씨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 아들들이 불과 1,2분 사이에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가슴에 사무친다"며 "그런데도 자작극이니 좌초설이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우리는 당해보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은 천안함 46용사 유족들 외에도 많은 가족들이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46용사, 한주호 준위를 비롯한 전사자와 애국선열을 참배했다. 국가보훈처와 국립대전현충원은 이들을 위해 4~6일 '롤콜'(Roll callㆍ호국영령 이름부르기) 행사를 마련했다. 학생과 시민, 유족들이 순직한 1만8,300여위(位)의 이름을 부르며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베트남 참전 국가 유공자로 2008년 별세한 고 유정우(육군 병장 제대)씨의 아들 유시동(38)씨 내외도 참가해 아버지와 다른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유씨는 "선열과 아버지를 참배하러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며 "아버지의 이름을 마이크 앞에서 불러보니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천안함 유족들은 아들들과의 긴 인사 끝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뗐다. 박정자씨는 아들에게 "네 생일인 7월에 다시 오마"고 약속했다. "아들 생일이 장마 때라, 이제는 늘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지난해 7월 진영(아들)이 생일 때 묘비 앞에 생일상을 차려 주는데 어찌나 장맛비가 세차게 불어대던지 올해는 비가 적게 왔으면 좋겠어요."
박씨는 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다.
대전=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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