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故)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 의 도입부다. 시인 김춘수는 이 밖에도 수많은 주옥 같은 시를 남겼지만 꽃의 시인으로 각인돼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유치 특임대사 김진선(65). 그에게 평창은 김춘추의 꽃이다. 강원도의 이름없는 두메산골에 불과하던 평창을 동계올림픽 무대에 데뷔시키면서 오늘의 평창을 낳게 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평창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혁명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D-30일을 앞두고 8년전 체코 프라하에서 전 세계를 향해 ‘yes 평창’ 사자후를 토해낸 그를 만났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평창의 ‘운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체면’이 걸린 사안으로 일이 커져버렸다.
“3수생으로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심정이다. 피가 마른다. 평창의 뼛속까지 다 헤아려 볼 수 있지만 IOC위원들의 표심은 정말 종 잡을 수 없다. 논리와 명분으로 차라리 점수를 매겼으면 좋겠다. 공통분모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분명한 것은 평창의 지명도가 뮌헨과 안시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언론들이 평창의 유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데...
“2014 도전때도 우호적인 기사가 나오긴 했지만 지금처럼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좋은 조짐이다. 하지만 최후의 1분1초까지 쪼개 득표활동을 계속 해야 한다.”
-평창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앞선 두 차례 도전땐 일부 걸림돌이 있었다. 인천아시안게임과 대구세계육상선수권과 같은 메이저대회 유치신청과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쟁국가들의 시기와 질투를 살 핑계거리가 없다.”
-평창 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을 꼽자면.
“독일 IOC위원이자 IOC수석부위원장인 토마스 바흐의 영향력이다. 그는 차기 IOC위원장이 확실시되는 인물이다. 따라서 IOC위원들은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IOC위원들의 막판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IOC위원들은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하다. 다급한 마음에 동시다발적으로 접근해 귀찮게 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면 역풍을 맞는다. 동양의 따뜻한 정을 앞세워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세련되게 호소해야 한다. 의욕이 앞서 IOC윤리규정을 어긴다면 정말 큰일난다.”
-IOC위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면.
“IOC와 함께 한지 12년째다. 하루아침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원지사를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IOC위원들을 만나면 아직도 ‘거버너 김’(governorㆍ도지사) 이라고 부르며 친밀감을 나타낸다.”
-평창을 유치후보도시로 내세운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1994년 강원도 기획관리실장을 할때다. 도(道) 발전전략을 고심하다가 ‘일대 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를 뒤집어 놓을 만한 카드로 두 가지를 구상했는데 국제관광엑스포와 동계올림픽유치였다.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때 혼자서 일본을 방문해 나가노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평창에 대한 확신이 섰다. 그 해 말 민선지사로 당선되고 난 후 동계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대회유치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역대 개최도시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국가 이미지 제고와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이란 나라가 국제사회에 지명도를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88 서울올림픽과 2002 월드컵이 아닌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효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것보다 동계올림픽을 통해 우리사회가 신명이 났으면 한다.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갈등을 올림픽을 통해 신명 나게 녹였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90%가 넘는 지지를 보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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