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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 공방-Hot Potato] 쌀 조기 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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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슈 공방-Hot Potato] 쌀 조기 관세화

입력
2011.06.0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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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개방을 두고 다시 정부와 농업계의 고민이 시작됐다. 우리는 2014년까지 쌀 시장 개방(관세화)을 유예 받고 있는데, 관세화를 통해 개방 시기를 앞당기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만약 내년부터 관세화를 시작하려면 9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우리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주무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도 조기 관세화 채택 여부에 대한 내부 논의를 시작했다.

쌀 관세화 논의는 1995년부터 시작됐다. 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정부는 쌀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 대신 88~90년 평균식량소비량(513만톤)의 1~4%를 10년간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MMA) 제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2004년 재협상에서 수입물량을 매년 2만톤씩 늘리는 조건으로 시장개방을 10년간 더 유예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장개방 대신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은 UR 협정이 발효된 95년 5만1,000톤에서 올해는 34만8,000톤으로 늘었고, 2014년에는 40만9,000톤에 이를 전망이다.

문제는 쌀 재고. 국내 쌀 소비 감소로 생산량이 수요량을 훨씬 상회하는 상황인데 수입량까지 늘어 재정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래서 조기 관세화로 의무수입 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부터 관세화를 하면 이후 의무수입량은 올해 수준(34만8,000톤)으로 고정돼 2015년 이후 매년 397억원의 쌀 재고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최근 5년 사이 국제 쌀 값이 배 이상으로 올라 국내 쌀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도 조기 관세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조기 관세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주곡일 쌀이 갖는 민감성과 상징성. 단순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식량 안보와 직결되고, 국내 쌀 산업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대다수 농가의 주 수입원인 쌀 시장 개방을 피해농가에 대한 지원대책 없이 국제 쌀값 상승, 재고 관리비 등만을 이유로 추진하면 아니 된다는 게 농민들의 입장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조속 추진 찬성

"매년 늘어나는 의무수입량 골치, 시장 개방해 과잉 재고 부담 줄여야"

"쌀 조기 관세화는 '식량주권 포기'라는 명분론 때문에 과잉재고의 부담을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출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봉쇄당해 왔다. 이제라도 하루 빨리 쌀 시장의 개방 방식을 실리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할 때다."

쌀은 우리의 생명 줄과 같다. 그래서 쌀 시장만큼은 숱한 압력을 버텨내며 지켜왔다. 대신 '무역자유화'라는 국제 질서에 역행하는 대가로 일정 물량을 수입하는 일종의 벌칙, 즉 '최소시장접근(MMA)'을 수용했다. 1995년부터 쌀 소비량의 1~4%에 해당하는 물량(5만1,000톤~20만5,000톤)을 5%의 양허관세율을 적용해 의무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극적 개방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또 2004년 쌀 수출국과 협상에 나서 10년간의 추가 유예를 받았으나 매년 MMA물량이 늘어나는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관세화를 미루면 우리가 관세화로 전환한 뒤에도 의무적으로 사줘야 하는 물량이 36만8,000톤(2012년), 38만8,000톤(2013년), 40만9,000톤(2014년) 등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런 개방방식은 쌀 산업 발전이나 국익확보 차원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하루 빨리 관세화에 의한 개방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관세화(개방) 이후에도 MMA물량 이외의 추가적 수입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관세화 전환시 적용될 관세율은 최소 240%, 최대 400%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 세율을 부담하면 수입 쌀 가격은 80㎏당 29만~43만원으로 예상된다. 설령 관세가 100% 수준으로 감축되더라도 그 가격은 국내 쌀 가격과 같은 17만원 수준이다.

또 그럴 가능성은 대단히 낮지만 국제 쌀 가격이 폭락해 관세를 내고도 우리 쌀보다 값싼 외국 쌀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수입 쌀에 대한 거부감과 밥맛 차이 등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은 식탁용 쌀 만큼은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저율 관세로 의무 수입된 밥상용 쌀이 우리 쌀의 절반수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지 않고 있다.

둘째, 의무수입량 증가는 쌀 수급안정에 의한 농가소득 향상에 큰 부담을 준다. 쌀 소비감소 추세 영향으로 국내 쌀 생산량은 소비량을 매년 70만톤 내외 웃돌고 있어서 쌀 과잉생산이 구조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매년 2만톤씩 늘어나는 의무수입량마저 가세하여 쌀 수급안정을 해치고 있다.

결국 과잉재고는 국가의 양곡관리재정을 축낼 뿐만 아니라 쌀값 하락으로 이어져 농가소득 감소, 사회 불안정마저 초래하게 된다. 지난 해 산지 쌀 값 하락에 의한 '쌀대란'현상을 유발한 원인 중 하나도 밥상용 수입 쌀의 재고 누적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관세화 개방으로 전환하면 추가적 쌀 수입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낮은 관세율(5%)에 의한 의무수입량을 매년 늘려야 하는 현행 개방방식에 집착하는 일부 주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시장이 개방되면 재고 쌀과 고품질 쌀에 대한 자유로운 쌀 수출확대도 가능해진다. 우리가 지금처럼 쌀 수입을 제한하면 우리 쌀을 외국에 수출할 수 없다. 쌀 관세화유예 조건에는 '생산제한 조치'와 함께 쌀 수출을 위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것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쌀이 남아돌아도 이를 필리핀 등지로 수출하거나 고품질 쌀을 해외에 수출하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세화에 의한 수입을 자유화하면 우리 쌀의 해외수출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과잉재고 문제를 해결하여 농가소득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쌀의 고부가가치화를 촉진시켜서 우리 쌀 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다.

쌀의 관세화에 의한 개방은 '식량주권 포기'라는 명분론 때문에 쌀 산업은 과잉재고의 부담을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출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봉쇄당해 왔다. 이제라도 하루 빨리 쌀 시장의 개방방식을 실리를 추구하는 방식(조기 관세화)으로 바꿔야 할 때다.

성진근 (사)한국농업경영포럼 이사장· 충북대 명예교수

●조속 추진 반대

"조기 관세화 땐 개도국 지위 상실, 부분개방 유지해 경쟁력부터 높여야"

"무수입물량 6만톤은 정부의 적절한 수급관리로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담을 안고 가더라도 현행 부분개방 상태를 유지해 세계 식량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쌀 시장 조기관세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2015년부터는 쌀시장도 관세화로 개방하게 되므로, 미리 관세화로 개방해 버리는 게 연간 의무수입물량(MMA)을 약 6만톤 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조기관세화가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2015년 자동 관세화라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2015년 자동 관세화의 근거로 내세우는 게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문이다. 그런데 UR농업협정문에 따른 각 국가들의 의무이행기간은 선진국의 경우 2000년, 개발도상국은 2004년에 이미 종료됐다.

하지만 UR의 후속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가 아직도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진국은 2000년의 상태에, 개발도상국은 2004년의 상태에 머물고 있으면서 그 어떤 추가적인 개방조치나 의무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소위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하며 세계 쌀 시장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DDA 협상이 타결되기 전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추가적인 개방조치나 의무이행 없이 2004년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당연한 권리다. 또 조기 관세화 선언 시 우리나라에 특별보호 요소가 없어졌다고 간주돼 DDA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개방 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나서서 카드를 내보일 필요는 없는 셈. 더욱이 DDA 협상은 타결시한을 수 차례 넘겨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2005년 이후에는 실질적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아예 물 건너갔다고 전망하는 통상 전문가들도 늘어나는 추세. 당연히 한국은 2015년 이후에도 DDA 협상 타결 이전까지는 현상유지만 할 권리가 있다.

둘째, 결국 남은 문제는 의무수입물량을 6만톤 정도 줄이고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면 개방할 것인지 아니면 약간의 부담을 떠안더라도 현행처럼 부분개방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세계 식량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급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조차 25% 밖에 되지 않는 지금의 식량자급률을 우려하면서 식량자급률이 50% 정도는 돼야 한다고 밝혔는데 조기관세화는 그나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의 식량자급률 조차 포기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6만톤은 국내 쌀 생산량의 1.3~1.4%에 불과한 물량이다. 금액으로는 약 300억~400억원 정도. 이미 17~20% 정도의 비축식량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규모로 볼 때 크게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며, 정부의 적절한 수급관리로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담을 안고 가더라도 현행 부분개방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장기적으로 세계 식량위기에 대처하고,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국내 기반을 유지하는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실현 가능성도 미약하고 경제성도 매우 낮은 해외 농업개발이나 국제곡물유통회사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 보다는 조기관세화를 포기하고 국내 자급기반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더 효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소를 잘 지키고 키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결국 조기관세화는 중장기적 안목이 결여된 채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현혹되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국민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여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에 해당한다. 특히나 구조적으로 만성적 공급부족 상태 때문에 세계적 식량위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더 이상 정부는 조기관세화 같은 근시안적인 정책에 연연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중장기적인 식량위기 대비책을 마련하고 식량주권을 튼튼하게 세우는 방안을 수립하는데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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