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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국식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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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국식 패권주의

입력
2011.06.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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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지난 1,000년 최고의 인물로 칭기즈칸을 뽑았다. 익히 알다시피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제국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그의 손자 쿠빌라이칸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몽골제국의 영토는 태평양에서 지중해까지 유라시아대륙 거의 전체를 아우를 정도였다. 역대 영웅들인 알렉산더, 카에사르, 나폴레옹이 건설한 제국들의 면적을 다 합쳐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록 오래가진 않았으나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 민족주의도 몽골 지배에 대한 반작용으로 태동했을 만큼 그의 제국은 이후의 세계사를 영원히 바꿨다.

■ 서양 시각에서 볼 때 그는 야수와도 같은 악의 화신이었다. 아이, 여성을 가리지 않고 적국민의 씨를 말렸을 뿐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도 남기지 않는 극도의 잔인성 때문이었다. 19세기말 당시 신흥 열강으로 부상하는 일본을 경계하기 위해 독일 빌헬름 황제가 주창한 황화론(黃禍論)이 먹혔던 것도 서구사회 인식에 깊이 각인된 몽골의 공포 때문이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항복하는 상대에 대해선 거의 완벽한 평등과 자치를 보장하는 정반대의 관용도 보였다. 많아야 고작 10만 병력으로 대제국 건설과 운영이 가능했던 이유다.

■ 세계를 바꾼 천년영웅이지만 그는 유목민 후예답게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어느 날 초원 한 곳에서 바람처럼 일어나 폭풍처럼 세계를 휩쓸고는 역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출생지로 알려진 곳만 열 곳이 넘고, 무덤 또한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후손들은 그가 생전에 쓰던 흰 천막 8개(八白室)로 상징적 능(陵)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지금 네이멍구(內蒙古)자치주에 있는 칭기즈칸릉은 마지막 팔백실이 있던 곳을 1950년대 중국이 가릉(假陵)으로 조성한 곳일 뿐이다. 그나마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이 파괴한 것을 재건축한 것이다.

■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칭기즈칸을 '위대한 중국인'으로 만드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부 몽골인이 중국(네이멍구)에 산다고 칭기즈칸을 중국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민 가 미국시민권을 얻었다 해서 그 조상까지 미국인이라고 떼쓰는 것과 같다"고 비웃었다. 계엄 후 일단 잦아들긴 했지만 최근 네이멍구 사태도 오직 힘으로 밀어 붙이려드는 이러한 중국식 패권체제와 무관치 않다. 티베트, 신장 사태나 동북공정 같은 것도 다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자신들이야말로 제국주의 패권다툼의 가장 큰 피해자였는데도.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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