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관료 외자(外資). 요즈음 한국인은 이들 '힘 있는' 경제 주체들의 문제점을 보고 있다. 재벌은 소액주주의 돈을 훔치고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런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면 관치와 부패가 따라온다. 론스타 같은 외자는 불법행위에 '먹튀' 궁리나 하는 것 같다.
재벌 관치와 함께 경제 3대 악
한국에서 재벌과 관치는 쌍생아다. 한국은 원래부터 관치사회였지만, 정부가 경제발전에 적극적 역할을 하는 바람에 더욱 그렇게 됐다. 재벌도 정부 정책의 산물이다. 재벌은 1960~70년대 산업정책의 결과 만들어진 다각화기업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치금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벌과 관치는 명암이 교차하는 체제다. 재벌은 개도국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의 상표와 연구ㆍ개발 능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재벌은 잘되면 자기 공이고 못되면 정부가 맡아주는 구도 하에서 마구 투자를 했다. 다각화체제를 이용한 내부거래로 소액주주 돈을 빼먹고 중소기업 죽이기를 다반사로 했다. 그런 한편 관치금융 하에서 은행은 경영주체가 서지 않고 부실채권을 양산했다.
외자는 어떻게 한국 경제의 중요 주체가 되었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구조조정을 하면서부터다. 외자는 재벌과 관치의 폐해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실제로 위기 후 외자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은행 경영의 신중성을 올려서 재벌과 관치를 개혁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처음부터 함정이 있었다. 외환위기 자체가 미국이 억지로 일으킨 성격이 강했는데, 그 바탕에는 월가의 투기자본의 이해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조야(朝野)는 재벌과 관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그 함정을 보지 못했다.
재벌 관료 외자 중 가장 나쁜 것은 '먹튀' 외자다. 재벌과 관치는 불투명하고 부패해도 대부분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만든다. 그러나 '먹튀' 외자는 그 과실을 바로 빼내 간다. 실제로 1997년 위기 이후 외자는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렸지만 한국은 막대한 '국부 유출'을 겪었다. 그것이 다른 성과로 보상되지도 않았다. 위기 후 한국경제가 얻은 것은 성장동력 저하와 양극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1997년 이전 한국 경제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조차 부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 견해가 아니다. 위기 전 재벌과 관치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외환위기는 아니더라도 국내적 금융위기를 일으키도록 되어 있었다.
더욱이 위기 후 재벌과 관치가 개혁이 되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도 재벌의 변칙상속과 중소기업 죽이기가 횡행하고 있다. 관치의 폐해는 저축은행 사태 등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 한편 모든 외자가 '먹튀'인 것은 아니고, '건전한' 외자가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사회 감시받는 국민기업 필요
요는 재벌 관료 외자 중 한쪽의 문제점만 보고 다른 쪽 문제점에 눈 감는 식은 곤란한 것이다. 셋 모두 장점과 함께 문제점이 있다는 인식 위에서 균형 있는 해결책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재벌의 대안은 포스코 같은 국민기업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관치를 벗어나기 어렵지만, 어차피 완전한 해결책은 없다. 관치를 견제하고 재벌의 행태를 바꾸는 데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그 자체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건 경제건 힘 있는 주체들은 그것을 남용하기 마련이다. 그들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그 장ㆍ단점을 균형 있게 파악하는 것이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원리다, 힘없는 주체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 아닌가.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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