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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시로 여는 아침' 새 필자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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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시로 여는 아침' 새 필자 진은영 시인

입력
2011.06.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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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41) 시인은 요즘 모리스 블랑쇼(1907~2003)의 을 읽고 있다고 했다. 책에서 “수수께끼란 그쪽으로 끌린다는 것 이외에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기를 요구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은둔의 철학자’ ‘얼굴 없는 사제’로 불리는 블랑쇼는 탈근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 작가자 사상자. 진씨에게 시(詩)는 블랑쇼가 말한 그 수수께기 같은 것이다. “모호하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꾸 기억나는 시, 그런 시를 읽다 보면 삶에 대한 참을성을 기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어쩌면 생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일 수도 있음을 가르쳐줄 수 있지요.”

시를 수수께끼처럼 다루는 이런 태도, 시단 내에서조차 “요즘 젊은이들의 시는 너무 어렵다” “작위적 재담이나 억지스러운 농담이다”“자폐적이며 소통불능이다” 등의 노장들의 불만을 낳게 했는지도 모른다. 주로 2000년대 등단한 70년대산(産) 시인들을 향한 쑥덕거림 속에서도 그러나 진씨에 대한 평단의 주목은 세대를 아울러서 예사롭지 않다. “너무 좋아 덧붙일 말이 없다”(심보선 시인)는 동료 시인들의 찬사야 말할 것도 없고, “그 시인을 생각하면 ‘언어의 심장을 움직일 줄 아는 시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술 한잔 건네고 싶다”(천양희 시인)는 노 시인들의 지지까지. 지난해 현대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심사를 맡은 원로 평론가 유종호씨는 “수다스러운 듯하면서 독특한 페이소스를 전해 주는 한편, 언어구사에서도 능란하다” 며 젊은 시인들 중에선 이례적으로 상찬했다.

암호문 같은 문장과 생경한 비유들로 새로운 감수성을 전하는 2000년대 시인들 중에서도 유독 그가 도드라진 것은 언어와 현실, 감각과 사유, 삶과 예술, 문학과 정치 사이의 균열과 긴장을 누구보다 힘껏 밀고 가기 때문일 터다. 실제 그가 촛불 시위로 나라가 들썩였던 2008년‘사회 참여는 쉬운데, 이상하게 그것을 시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쓴 고백의 글은 이후 문학과 정치성의 관계에 대한 뜨거운 토론을 여는 기폭제가 됐다. 평론가 신형철씨는 “모든 것이 한 시인의 고로부터 시작됐다”고 했을 정도.

이 문제적 젊은 시인이 한국일보가 연재하는 ‘시로 여는 아침’의 새로운 필자로서 독자를 찾는다. 손택수 허수경 김연수 함민복씨에 이은 다섯 번째 시 배달부. 6일부터 매주 월~수요일 자신이 직접 고른 시를 소개하고 그 시에 대한 단상을 풀어놓는다.

2000년 등단 후 (2003) (2008) 등 두 권의 시집을 낸 진씨는 이화여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니체와 나가르주나를 비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7) 등의 저서를 낸 철학도이기도 하다. 낯선 감각과 이미지들이 불꽃처럼 빛나는 그의 시에 “감탄할 만한 사유와 만만치 않은 인생론이 담겼다” (김명인 시인)는 평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인이자 철학도인 진씨가 일간지의 산문을 통해 대중 독자를 만나는 것은 그에겐 첫 시도이자 일종의 모험이다. 그는“문예지와는 다른, 대중 독자와 만난다는 점에서 고민이 들긴 하는데, 그 때문에 따뜻하고 다정하고 산뜻한 시만 소개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단번에 아름답구나, 감동적이구나 라는 느낌의 시도 좋지만 아침 등굣길에 만난 소년이나 소녀처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끌리는 시, 어리둥절한 사랑 같은 시, 어디선가 날아온 알 수 없는 알파벳으로 적힌 시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다.”

이런 다짐으로 미뤄 이번‘시로 여는 아침’ 은 수수께끼 같은 시의 세계를 탐험하는 실험적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는 “다수의 지배적 의견과 조금 다르더라고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며 “그 모호하고 묘한 구석 때문에 아침에 읽고 내내 생각하고, 한 번 더 읽어 보려고 신문 귀퉁이를 접게 만드는 시를 같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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