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저축은행 사태를 둘러싼 여야의 무차별 폭로전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진상 규명은 뒷전인 채 대정부질문에서 '시중 통신'이나 '정황 증거'만 가지고 상대방 주요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등 의혹을 부풀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다.
2일 대정부질문에서는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와 야당 핵심 당직자 등의 실명이 여야 국회의원의 입에서 줄줄이 언급됐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2007년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세 차례 캄보디아 방문 때마다 부산저축은행의 주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고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올 1월 서울 청담동 한식집에서 청와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여권 실세와 가까운 기업인 브로커 신삼길씨 등 6명이 만났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김 원내대표의 출입국 기록, 청담동 한식집 사진ㆍ자리 배치도 등도 자료화면으로 제시했지만 로비나 비리 의혹과 직결될 만한 구체적인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검은 커넥션 제보를 여러 차례 받았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밖에 삼화저축은행 문제에 대한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인 박지만씨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의 관련설 등도 별다른 '팩트'없이 의혹만 증폭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같은 폭로전에 대해 사회 각계의 비판이 제기되자, 급기야 여야 원내대표는 3일 국회 공개석상서 의원 비리 의혹을 발언할 때 사전 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신사협정을 맺기로 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이 부여한 소중한 시간을 폭로전으로 얼룩지게 한다면 국민 앞에 송구한 일"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신상협정을 규칙으로 정하긴 힘든 만큼 면책특권 보호막 자체에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정당보다 의정활동 우선, 의원 상호존중의 원칙을 불문율로 존중하고 있는 미국 의회와 달리 우리는 '여당은 정부 옹호, 야당은 정부 비판'이라는 맹목적 틀에 빠져 있다"며 "군사독재 당시는 면책특권이 절대적이었지만 이제는 의원들이 스스로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기본법 46조1항도 면책특권을 정해 놓았지만 '다만 비방적 모독에 대해서는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달고 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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