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쏟아지는 먹구름 지표… 우울해진 美 경제 기상도
중국의 4대 미인으로는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 그리고 왕소군(王昭君)이 꼽힌다. 이 가운데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로, 궁중 화가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되어 억울하게 흉노족 왕 호한야(胡韓耶)의 첩이 되었다. 이런 사연을 두고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逵)는 다섯 수의 시를 남겼는데 이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유명하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인들 화초가 없으련만 봄은 왔으되 봄 같지가 않구나."
지금 미국인들의 가슴에는 이 시구가 와 닿지 않을까. 예상과 달리 미국 경제에 싸늘한 냉기가 흐르는 탓이다. 금년 초만 하더라도 미국 경제는 연준의 2차 대규모 유동성 공급(QE2)와 정부의 감세정책에 힘입어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유가 급등과 폭설 등 이상 기후, 예기치 못한 일본 대지진이 미국 경제에 대한 기대를 꺾어 놓았다.
지난달 미 상무부가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보자. 1분기 경제성장률이 1.8%에 그쳐 전분기 3.1%에 비해 크게 후퇴했다. 3분기 만에 최저 수준이다. 부문별로 보면 개인소비 증가율이 유가 급등, 소비심리 악화 등으로 2.2%에 그쳐 전분기(4.0%)에 비해 절반 가까이 둔화되었다.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를 낳고 있던 주택경기는 올 1, 2월 중 폭설로 더욱 악화됐다. 주택판매 부진으로 재고물량이 넘쳐나고, 1분기중 주택가격(S&P 기준)은 2006년 최고치에 비해 3분의1이 떨어졌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경기는 주택 경기보다 더 부진하다. 이밖에 수입이 증가로 돌아서면서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기여도가 크게 낮아지고 정부 지출도 지난 분기에 이어 성장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고용, 생산 등 다른 지표들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업률은 3월에 8.8%까지 하락하였다가 4월에는 9.0%로 다시 높아졌다. 2∼4월 중 매월 20만명 이상 증가하던 비농업부문 취업자수도 5월에는 이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고용시장의 선행지표로 활용되는 신규 실업수당 청구자수도 최근 6주간 다시 안정수준인 40만명을 넘어서면서 취업시장에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제조업 산업생산의 경우 일본 대지진에 따른 공급망 훼손 등으로 4월 들어 줄어들었고 ISM 제조업지수 역시 3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5월에는 2009년 9월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자본재 수주도 4월 들어 감소하여 향후 설비투자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소매판매 및 개인소비 심리도 위축되었다. 1분기중 월평균 1.0%를 기록한 소매판매 증가율이 4월 들어 0.6%로 낮아졌다. 소비자신뢰지수는 2월을 고비로 하락하고 있다.
온통 먹구름뿐인 지표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국 경제는 어떻게 전개되는 걸까. 현재로서는 낙관적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부에서 더블딥을 걱정하는 등 비관론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최근 미국 경기부진을 경기회복 과정에서의 일시적 후퇴인 소프트패치가 재현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봄에도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세제혜택이 종료되면서 2분기 성장률이 일시 둔화된 적이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미국경제가 개인소비, 수출 등에 힘입어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올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주택 및 고용시장이 여전히 부진한데다 재정악화로 추가 재정지출의 제약, 6월말 연준의 2차 양적완화(QE2) 종료 등이 미국 경기회복을 제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지속, 고유가, 중국의 긴축 등 대외여건도 만만치 않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주요 전망기관들은 미국 경제성장률이 하반기부터 3%대로 높아지겠지만 연간 성장률은 지난해(2.9%)보다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경제가 최근의 부진을 빨리 떨쳐내고 따스한 봄기운을 맞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윤숙 한국은행 국제경제실 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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