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불거지기 전인 올해 2월 초 잘 아는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경기 수원시에서 작은 건물 하나를 구입해 다문화가정이나 소외계층의 여성들을 교육시키고 고용까지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길거리의 노숙자나 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작은 성의라도 표시하는 평소 성품으로 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잘 되기를 바랬다.
그 후 3개월 여가 흐른 지난주 말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무척 홀쭉해진 얼굴을 보고 '사업 추진이 순조롭지 않았겠구나'하는 짐작을 했는데, 역시 그랬다.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 위해 금융권을 제 집 다니듯 찾아 다녔지만 결국 허사가 됐다는 것이었다.
은행이 대출을 거절해 손을 놓고 있다가 어렵사리 제 2금융권인 저축은행을 소개 받아 성사가 거의 될 뻔했는데 브로커 비용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저축은행의 담보대출 금리가 연 10%선인데, 저축은행을 소개해준 브로커(중개인)까지 총 대출액의 4%를 커미션으로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후배는 "서민들에게 금융권 대출은 여전히 접근하기 힘든 벽이라는 것을 절감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계약금을 날리게 된 것도 아쉽지만 생활보호대상자 몇 분에게 취업 의사를 타진했는데 그분들에게 사업을 못하게 됐다는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더 큰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요즘 연일 신문 지상을 뒤덮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와 후배의 처지를 비교하니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저축은행은 1금융권 접근이 용이치 않은 서민이나 중소ㆍ영세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1972년 설립된 소규모 지역 금융기관이다. 상호신용금고라는 명칭으로 출발했는데 외환위기 이후 재정 부실이 급격히 심각해졌고, 그런 상황에서 진승현 게이트 같은 신용금고 비리가 터지면서 상호신용금고 업계는 위기를 맞았다. 금융당국은 동반 파산 위기에 몰린 상호신용금고 업계를 살리기 위해 2001년 상호신용금고법을 개정, 명칭을 지금의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꿨다.
부실의 불씨는 여기서 시작됐다. 허울 좋게 '은행'이라는 명칭을 단 저축은행들은 2002월드컵을 전후해 불붙기 시작한 주택 개발사업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돈을 굴려 큰 수익을 올리면서 '서민 금고'라는 태생을 잊고 '대형 은행'처럼 군림하기 시작했다. 서민들이 피땀 흘리며 평생 벌어서 맡긴 재산을 서민들에게 대출하는 고유 기능은 외면한 채, 대주주의 재산 불리기용 '사(私)금고'로 편법 사용했다. 부산저축은행이 대주주의 압력으로 자산가치 124억원에 불과한 납골당에 무려 1,000억원을 부당 대출해주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유화의 부작용이다.
저축은행들의 불법 행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대주주들이 편법 투자한 대형 개발사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이 커졌다. 당연히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논란이 다시 시작됐고, 이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 정치권, 감사원, 청와대 등을 상대로 한 저축은행의 전방위 로비가 시작됐다. 요즘 곪아 터지는 저축은행 관련 각종 정ㆍ관계 비리들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저축은행들을 '비리 백화점'이 되도록 방치한 금융당국은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대주주와 그와 결탁한 정ㆍ관계 인사들을 철저히 찾아내 단죄하는 한편, 저축은행을 본연의 역할인 '시민의 금고'로 돌려놓아야 한다. 부실덩어리를 은행에 떠넘겨 연명시키는 행위는 더 큰 부실과 비리를 잉태할 뿐이다.
송영웅 정책사회부 차장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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