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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서양미술학자 노성두 '유혹하는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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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서양미술학자 노성두 '유혹하는 미술사'

입력
2011.06.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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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원근법·인체비례를 놓쳤다"

2000년대 한국 문화의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미술에 대한 관심의 고조다. 실제로 크고 작은 전시회가 잇따르고, 거기에 인파가 몰리며, 그림과 화가를 다룬 책이 쏟아지고, 그림을 직접 그리는 애호가가 증가하고 있다.

푸른역사아카데미가 2일 시작한 목요강좌에 '유혹하는 미술사'를 넣은 것은 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52)씨가 진행하는 이 강좌는 오도된 신화에 도전하고 고정관념을 깨부수면서, 서양미술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자리다.

노성두씨가 2일 첫 강좌에서 도전한 신화는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의 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아놀드 하우저(1892~1978)의 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소개한 는 1950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30여개 언어로 번역돼 수백만권이 팔린 서양미술의 바이블 같은 책이다.

'유혹하는 미술사'

강의 제목을 '유혹하는 미술사'로 정한 것은 서양미술에 유혹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노성두씨는 설명한다. 동양미술이 개인의 수양이나 철학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서양미술은 과시적인 측면이 많아서 색상이 진하고 감칠 맛이 나는데 그런 것이 결국 유혹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노씨는 "서양에는 경쟁, 다툼, 승부의 문화가 강하다"며 "그런 전통 속에서 인간 내면의 빨갛고 파란 욕망을 분출하는 마당으로 미술이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런 분위기도 국가마다 차이가 났다. 화가이자 판화가였던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16세기 초 베네치아를 방문한 뒤 "독일에서는 미술가가 기생충 취급을 받았는데 여기에서는 제후 대접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화가들이 오래 전부터 그런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노성두씨에 따르면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의 주수입원은 술집 간판을 그리는 것이었다. 초상화 같은 것은 평생 한두번 밖에 그리지 못했다. 대신 깨진 보석함을 수리해달라면 그렇게 했고, 구두를 수선해달라면 그렇게 했으며, 망가진 분수대를 고쳐달라면 또 그렇게 했다. 이를 위해 화가들은 공방에서 모자이크, 프레스코, 조각, 청동주조 등 여러 기술을 배웠다. 당시 이탈리아 술집의 간판이나 벽에는 포도 넝쿨 아래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술을 마시는 그림이 많았는데 강한 햇살과 겨울철 비 때문에 색이 바래면 5년이나 10년마다 고쳐 그려야 했다. 그 일을 화가들이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같은 천재들이 등장하면서 미술가에 대한 대접이 확 달라졌다는 게 노성두씨의 설명이다.

원근법, 밀레니엄 최고의 발명품

뉴욕타임스는 지난 밀레니엄 최고의 발명품으로 르네상스 원근법을 꼽은 적이 있다. 구텐베르크나 코페르니쿠스의 업적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노성두씨는 "미술에서 원근법은 단순한 작업 기법이 아니라 근대의 탄생, 시각 주체로서 인간의 재발견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회화라는 유한한 평면에 기하학적 규칙에 따라 공간을 집어넣는 것이 원근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눈이며, 풍경은 거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를 피라미드에 비유하면 사람의 눈은 피라미드의 꼭지점이고 눈에 보이는 풍경은 피라미드의 바닥이다. 피라미드를 옆으로 눕힌 뒤 허리를 자르는 횡단면이 바로 회화가 된다. 이렇게 보면 회화는 사람과,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 사이의 매개가 된다. 만약 사람이 몸을 움직여 시점을 바꾸면 보이는 대상도 함께 움직인다.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바깥 대상을 보면 눈에 보이는 대상이 함께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이전에는 회화의 대상은 움직이지 않는 피조물로 인식됐다. 그러나 원근법이 등장한 뒤로는 그 대상을 보고 그리는 주체의 시각이 중요해졌다. 내 눈으로 보이는 대상을 내가 재현하는 것이다. 노씨가 시각 주체로서 인간의 재발견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체비례, 신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시도

인체비례는 인체의 아름다움, 인체의 건강성은 인체 각 부위의 비례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다. 서양에서 인체비례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을 자신과 꼭 같이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특히 남자에게서 신의 형상, 완벽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때 그들은 자와 컴퍼스를 사용하고 보편 언어인 수학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측정하려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의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1445?~1510?)가 인체비례를 다룬 을 쓸 때 삽화를 직접 그림으로써 인체비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고대에는 6등신 비례를 주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8등신 비례를 많이 적용한다. 이때 비례의 기준은 머리의 길이 즉 턱 끝에서 정수리까지의 길이다. 8등신 비례로 보면, 머리의 길이가 1일 때 인체 전체의 길이가 8이 돼야 가장 아름답다. 인체비례에서 원래 기준은 머리의 길이가 아니라 발바닥 길이였다. 원근법을 탄생시킨 알베르티(1404~1472)가 1435년 "지금까지는 발바닥 길이를 기준으로 했는데 앞으로는 머리 길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발바닥과 머리의 길이를 실제로 잰 뒤 두 길이가 거의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체에서 가장 고귀한 부위인 머리를 기준으로 삼자고 했던 것이다.

곰브리치가 원근법, 인체비례를 빼먹은 이유

서양 미술에서 원근법과 인체비례는 양대 발명품으로 꼽힌다. 미술사가 치고 이 둘과 씨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정작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 곰브리치는 에서 이를 다루지 않고 있다. 노성두씨의 설명은 이렇다. "곰브리치는 사회심리학으로 미술사학을 공부했으며 자연과학적 요소가 강한 원근법은 공부하지 않아 지식이 없다. 인체비례의 경우 신이 지어낸 인간을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성경에 없으므로 유대인인 그가 탐탁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첫날 강의는 이렇게 곰브리치를 비판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노성두씨는 "곰브리치든 아니든 누군가를 우상화해서는 안된다"며 "스스로의 눈으로 미술을 바라보라는 뜻에서 강의의 방향을 정했다"고 말했다.

'유혹하는 미술사'는 매월 첫째 목요일 오후 8시에 진행되는데 종료 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 도서출판 푸른역사, 다양한 인문학 강좌 개설

대중 역사서 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푸른역사가 개설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푸른역사아카데미(http://cafe.daum.net/purunacademy)다. 4월 25일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에 문을 열었으며 목요강좌, 월요강좌, 격돌서평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들 프로그램 말고 역사책 100권 읽기 동호회 결성, '100인 100강'의 개설을 추진 중이다.

매월 목요일 오후 8시 열리는 목요강좌에서는 4명의 강사가 번갈아 강의하는데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씨가 '유혹하는 미술사'를, 철학 박사이자 로도스 출판사 대표인 김수영씨가 '철학자의 포스트잇'을, 음악 칼럼니스트인 정준호씨가 '클래식으로 들어오다'를, 한림대 연구교수인 인문학자 로쟈(이현우)씨가 '천국보다 낯선 서재'를 각각 진행한다.

월요강좌 역시 전문가를 초빙해 진행하는 강좌인데 13일부터는 역사학자들이 출판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5회에 걸쳐 강의하며 이후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격돌서평은 특정 서적의 저자와 독자들이 만나 책의 내용을 놓고 질문과 토론을 하는 자리다. 5월 9일에는 를 놓고 토론했으며 6월 15일에는 를 놓고 서평 대회를 연다.

역사책 100권 읽기 동호회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등에서 반드시 읽을 역사책 100권을 선정해 함께 읽고 격주로 토론하는 모임이며 '100인 100강'은 성금 기부자의 이름으로 개설하는 강의다.

푸른역사아카데미는 이밖에 푸른아카역사여행 교사와청소년이함께하는역사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초대 소장은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가 맡았다. 문의 070-7539-4822.

■ 노성두 서양미술학자는

●1959년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1982년 독일로 건너가 쾰른대에서 서양미술사 학사과정부터 박사과정까지 공부했다. ●부전공으로 고전고고학과 이탈리아어문학을 공부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1994년 귀국해 서양미술사 강의와 저술 활동을 했다. ●<성화의 미소> <고전미술과 천번의 입맞춤> <그리스 미술 이야기> <유혹하는 모나리자> <천국을 훔친 화가들> 등 많은 책을 쓰고 <알베르티의 회화론> <바보배> <디자인과 시각 커뮤니케이션> <피지올로구스_기독교동물상징사전> <정치적 풍경>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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