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신하지 않았다/가엘 레비 지음·문신원 옮김/프리미엄북스 발행·248쪽·1만2,800원
엄마도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 명백한 사실을 잊는다. 자식을 위한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고, 모성본능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한다. 내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식을 위한 엄마의 희생이 가치 없단 소리는 물론 아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엄마들에게도 눈을 돌리자는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엄마들의 이야기다. 책에서는 통념과 반대로 자식들이 엄마 때문에 희생된다. 결과만 보고 사람들은 그 엄마를 천하에 있을 수 없는 마녀로 취급한다. 하지만 책은 분명한 이유를 제시한다. 바로 임신거부증이다.
이 책에 따르면 임신거부증 여성은 임신을 하고도 자신의 임신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하고 나서 인정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상상임신의 반대 개념인 셈이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 역시 그 여성이 임신했을 거라고 짐작하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배도 부르지 않고 몸무게도 거의 늘지 않으니까.
예기치 못했던 아이가 자신의 몸에서 나왔을 때 순간 격정적 감정에 사로잡힌 일부 여성들은 아이를 눈앞에서 치우려는 극단적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어머니와 동시에 정신질환 환자가, 살인자가 된다. 국내에서 임신거부증이 알려진 계기는 2006년 여름 서래마을에서였다. 한국으로 파견 근무 중이던 프랑스 엔지니어의 부인이 자신이 낳은 아이 3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후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임신거부증이 단순한 화제성 기사로 처리되고 말 일이 아니라 실재하는 병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성본능이란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모성을 본능이라 말하는 과학자들이 여전히 많지만 그렇지 않다 말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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