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이하 독도특위) 위원장과 소속 의원들이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러시아 방문 기간 중 러ㆍ일 영토분쟁지역인 남쿠릴 열도 4개 섬, 즉 에토로후·쿠나시리·시코단·하보마이 중 하나인 쿠나시리 섬을 방문하였다. 쿠나시리 섬 체류시간은 50분 정도로 매우 짧았지만, 한국 국회의원들이 일본 정부의 독도 관련 정책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러ㆍ일 영토분쟁 지역을 방문했기 때문에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이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한-일 관계 구축에 결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아니 되며, 또한 침소봉대(針小棒大)격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러시아연방 사할린 주 관할 하에 있는 4개 섬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은 1855년 시모다 조약(통상항행 및 경계획정조약),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56년 러ㆍ일 수교, 2009년 양국 정상회담에서의 지속적인 해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등 그 굴곡이 심하다. 특히 2010년 10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쿠나시리 섬을 방문했을 때, 일본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여 러시아 주재 자국 대사를 일시 소환하기도 했다.
일본은 1855년 시모다 조약 체결 이후 남쿠릴 열도 4개 섬은 지속적으로 일본 영토이며, 러시아가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러시아 정부는 4개 섬은 러시아 영토로 1951년 강화조약으로 일본의 권리는 소멸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이들 4개 섬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하는 자신의 '북방 영토'로 간주하고, 당해 지역 주민들의 무비자 방문허용, 경제적·인도적 지원 확대 등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 있다. 또한 홋카이도 삿포로에 위치한 구 도청건물 2층에는 4개 섬 반환을 촉구하는 상설 전시장을 설치ㆍ운영하는 등 이른바 '북방 영토'에 대한 일본 정부와 국민의 열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일부 국회의원들이 러시아 정부의 허가를 얻어 쿠릴 열도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동 분쟁지역에 있어 러시아의 관할권을 제3국의 국가기관이 인정하는 행위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분쟁지역 방문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분명히 '비우호적 행위'로 받아들일 것이며, 일부 보수파들은 이를 기화로 독도에 대한 도발을 심화 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의 방문이 진정으로 독도를 위한 활동이었는지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타국의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키는 것이 국제적인 관행이다. 이번 방문이 우리의 독도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얻는 것은 없고 일본의 국민감정만 건드림으로써 한ㆍ일 관계를 불필요하게 경색시켰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 정부는 제3국간 영토 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이번 방문이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일부 국회의원의 쿠릴 열도 방문이 쿠릴 열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을 한국이 인정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 정부에게 계속해서 이번 사건을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한ㆍ일 양국은 외교정책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는 예상 외의 사건에 대해서는 당해 국가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관행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양국의 선린우호관계 유지 측면에서 당연하다고 본다.
박기갑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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