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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가슴이 없는 공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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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가슴이 없는 공직자들

입력
2011.06.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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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다 도둑놈들!)"는 근 30년 전에 유행했던 말이다. 1982년에 방영된 TV드라마 에서 공주갑부 김갑순(1872~1961)이 입만 열면 이 말을 해 때마침 터진 장영자 어음사기사건과 맞물리면서 크게 유행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학생들이 "민나 도로보데스"를 외치며 "전두환 물러가라"고 시위를 벌이자 서둘러 방송을 끝내게 압력을 넣었고, 방송사는 김갑순이 냉면을 시켜 먹다가 급체해 죽는 걸로 서둘러 방송을 끝내 버렸다.

방부제가 썩은 저축은행사건

저축은행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바로 "민나 도로보데스"아닐까. 금감원 감사원 금융위원회에 이어 줄줄이 의혹대상으로 등장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서 '우리와 다른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과 세상 살아가는 법에 대해 분노와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불법 비리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감독과 검사, 감사를 맡은 사람들이 본연의 직무를 저버리고 한통속이 되어 '그들만의 리그'로 이득을 취함으로써 금융정의를 훼손하고 시장까지 교란했으니 보통 심각한 사건이 아니다. 말하자면 방부제가 썩은 것과 같다. 프로축구의 승부조작과 마찬가지로 금품을 매개로 한 금융 승부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생계형 범죄도 아니다. 비리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머리 좋고 학벌 좋고 살 만큼 사는 사람들이며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내세우는 인사들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면 일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 받은 공직자들이다. 맡은 일을 잘하고 물러나면 고소득으로 안정된 노후까지 잘 보장돼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 한 가지가 결여돼 있다. 그것은 가슴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거나 을의 입장을 고려하는 가슴과 정이 없다. 찬 밥을 먹어본 경험도 거의 없으니 아무리 정당하게 노력해도 세상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과 분노를 알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어떤 공직자들은 70년 아니라 700년이 지나도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올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저축은행 감사를 자제해 달라고 감사원에 부탁한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이 정창영 감사원 사무총장을 만나서 한 말은 "고도의 금융지식이 없는 감사원이 금융회사를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 총장은 "우리는 전문지식은 없지만 상식으로 옳고 그름이 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문답이 다 사실이라면 전문성을 내세우는 그들은 상식이 없는 사람들인 셈이다.

도덕성과 정직성, 상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문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해악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공직을 맡으면 안 된다. 가슴이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머리로만 개발한 정책이나 행정이 국가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과 부작용은 크고 무섭다. 좀 느리고 게으른 것 같지만 성심과 성의를 다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낫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가슴은 안 보고 '일 잘하는 사람들'만 선호한다. 그 일이 누구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하는가를 생각하기보다 새롭고 특이한 업적으로 남는 것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다. 4ㆍ27 재보선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된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가 후보 등록을 위해 중국에서 귀국했을 때 제일 먼저 한 말은 "일하고 싶어 미치겠습니다"였다. 정말 기겁할 말이다. 일하고 싶어서 미치면 안 된다. 그렇게 일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 난다.

아래로 계속 흐른 비리 물방울

가슴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한 달에 한 번은 현장을 찾으라고 말하지만, 가슴이 없는 사람들이 현장에 간들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속으로는 콧방귀만 뀌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자 국무회의 출석자가 금세 줄어들지 않던가.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중용하고 낙하산으로 산하기관에 보내는 인사가 거듭되고 겹치면서 부정적 승수(乘數)효과와 적하(滴下ㆍ트리클 다운)효과를 일으켜 발생한 게 바로 저축은행 비리사건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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