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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1004' 뜨니 학교 폭력 사라졌죠" 충무中 박정환 교사, 교내 문제 문자 제보 시스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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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1004' 뜨니 학교 폭력 사라졌죠" 충무中 박정환 교사, 교내 문제 문자 제보 시스템 도입

입력
2011.06.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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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경남 통영시 통영중학교로 발령받은 박정환(46) 교사는 놀랐다. 20여년간 학생 수 1,000명 이상의 대도시 학교와 500명 내외의 시골학교 등을 두루 거치면서 체득한 생각을 고쳐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은 학교 학생들이 좀 더 순박하다’는 그의 생각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작고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학생들은 얼마나 순진할까’하는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교무실로 불려와 무릎 꿇고 앉은 학생들의 일탈은 대도시의 것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흡연은 기본이고 오토바이 절도, 협박에 금품 갈취, 폭행, 집단 따돌림 등등.

교편 생활 21년 중 17년을 ‘저승사자부’로 불리는 학생부에서 지낸 박 교사는 마산, 창원 등 인근 대도시 학교서도 엄하기로 꽤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견 선생님.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내려가 학생들과 공도 차고, 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에는 도시락을 싸와 교실에서 점심을 해결하며 학생들과 어울렸던 덕에 그는 학교에서 ‘큰형님’으로도 통했다.

학생 지도에 잔뼈가 굵은 박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몇 년 전 충북 충주 대원고의 한 교사가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금연학교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했던 터. 박 교사는 교내 흡연 문제는 물론 폭력, 금품갈취 등 학교 밖의 일에까지 지도하기로 하고 교장에게 ‘1004 지킴이’ 시행계획을 보고했다. ‘서로에게 천사가 돼 바른길을 가도록 지켜준다’는 의미로, 학생들이 신원을 숨기고 발신번호를 1004로 통일해 교내 흡연ㆍ폭력 등을 박 교사에게 문자 메시지로 제보하는 시스템이었다.

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그게 먹히겠습니까.” “박 선생님 무리하지 마시고 몸 사리세요.” 하지만 보복을 두려워해 비행을 보고도 못 본 채 하던 학생들이 움직였다. “3학년 **형이 때려서 내일 학교를 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패밀리마트와 마을금고 사이 골목에서 등교시간 때마다 담배 피는 형들이 있습니다.” “2학년 6반에서 도난사건이 계속 발생합니다. 오늘만 두 건.” 사제간의 정이 묻어나는 메시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다양한 제보 메시지들에 박 교사의 휴대폰은 밤낮으로 삑삑거렸다.

이튿날 출근한 박 교사는 A4용지에 문자메시지 내용을 일일이 정리한 다음 교장이 주재하는 교무회의 때 보고했다. “이건 3학년 3반 건이고, 요건 2학년 1반 일입니다. 각 담임선생님들은 챙겨 주십시오.”

효과가 금세 나타났다. 폭력, 따돌림 등 비교적 무거운 사건들이 큰 폭으로 줄었다. 박교사는 “선생님들의 눈 뿐만이 아니라 수백명의 학생 모두가 감시의 눈이 되다 보니 문제 학생들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내 설문조사에서도 ‘1004 지킴이’ 효과가 두드러졌다. 지난해(3~5월) 조사에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들의 비율이 4.4%에서 올해 1.2%로 줄었다. 돈이나 물건을 빼앗긴 적이 있다는 응답비율도 5.2%에서 0.5%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비율도 0.7%에서 0.3%로 줄었다.

박 교사는 “1004 지킴이 도입 때 학생들을 고자질쟁이로 만들고 친구들 사이에 불신을 초래하는 부작용 우려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며 “하지만 그게 결국 친구들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별 무리 없이 정착했다”고 평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따돌림, 폭행, 갈취 등 ‘강력범죄’제보 일색이던 메시지 양상이 ‘경범죄’ 수준으로 크게 격하했다. 박교사는 “ 최근엔‘00가 급식소 새치기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몇 명이 망을 보고 게임합니다’는 등 질서위반 수준의 메시지들이 주를 이룬다”고 전했다. 이 같은 효과 덕분에 박 교사는 최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04지킴이 전용 휴대폰 한 대를 ‘하사’ 받았다. “무뚝뚝한 교장 선생님의 소리 없는 응원이죠. 다른 학교 선생님들께도 강추합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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