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구장 어디 없나요" 사회인 야구단 해외원정 몰린다
알림

"구장 어디 없나요" 사회인 야구단 해외원정 몰린다

입력
2011.06.01 17:34
0 0

지난달 20일 오후 5시께 필리핀 남동쪽 팔라우 공화국 코로르 섬. 이곳 야구장 '아사히 필드'에서는 조금 특별한 경기가 열렸다. 우리나라 사회인야구동호회원 10명이 이곳까지 원정을 와 팔라우 클럽팀 '코럴'과 친선 경기를 벌인 것이다.

작은 섬나라 야구장이지만 좌우 펜스 거리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의 열악한 야구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선, 홈 플레이트에서 좌ㆍ우 펜스까지 95m, 중앙 110m의 정식 규격을 갖추고 있다. 내ㆍ외야에 천연 잔디가 촘촘히 깔려 있고 해가 넘어가도 걱정할 게 없다. 경기장 사방에서 눈부신 조명이 쏟아져 경기를 이어 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조잡하긴 하지만 영어 중계방송도 곁들여져 흥을 돋운다. 운 좋으면 섬 전체 라디오 방송으로도 생중계된다. 퇴근 시간(오후 6시)이 되면 관중들도 하나 둘 몰려든다. 물론, 일방적인 팔라우 응원 소리이긴 하지만, 관중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경기를 하는 기분이 뿌듯하다.

섬나라 원주민들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투수의 공 빠르기가 시속 130~140㎞를 웃도는 데다 내ㆍ외야 수비 실력도 뛰어나다. 코럴팀 곽광우 감독은 "팔라우 원주민들은 타고난 강견(强肩ㆍ강한 어깨)을 갖고 있는 데다 통통하고 작은 체구와는 달리 발이 빠르고 유연하다"며 "이 정도 전력이면 우리나라 고교 야구 최상위급"이라고 했다. 곽 감독은 1979년부터 팔라우에 체계적인 야구 시스템을 도입, 국가대표 감독으로 발탁돼 미크로네시아 지역 야구대회에서 팔라우 팀을 우승으로 이끈 영웅이다.

이날 경기는 7회 공방 끝에 코럴팀이 나무 배트를 사용하고도 3대 1로 승리했다. 점수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실책이 양팀 합쳐 2개, 사사구가 3개에 불과할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였다. 우리나라 원정팀 감독을 맡은 김무현 경기도야구연합회장은 "스콜성 비가 오더라도 작열하는 태양과 배수가 좋은 잔디 토양 때문에 1,2시간 후면 경기가 가능하다"면서 "수준 높은 야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데다 타격ㆍ피칭 '원 포인트 레슨'도 받을 수 있어 최근 해외원정 야구 인구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원정 야구 참가자들은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은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이나 연월차 휴가를 활용한 직장인들도 상당수다. 지난해 4월 첫 팔라우 원정팀이 꾸려진 이후,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다. 다음 달에는 중국 광저우로 원정길에 나설 예정이다.

이처럼 해외원정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국내의 열악한 야구장 환경 때문이다. 국내 야구장 수는 사회인야구동호회의 수요를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생활체육회에 등록된 사회인야구팀은 5월말 현재 약 5,600개 팀. 여기에 대학동아리 등 등록되지 않은 '동네 야구팀'을 합하면 1만2,000여개 팀(25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야구장은 전국을 통틀어 140여개에 불과하다. 80~90개 팀이 한 구장을 사용하는 셈이다. 그나마 마운드가 없거나 한쪽 펜스 거리가 짧은 절름발이 구장이 많고 불펜, 덕아웃 등 부대시설이 없는 구장이 부지기수다. 천연잔디는커녕, 흙 바닥에 평탄 작업만 제대로 돼 있어도 감사할 따름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구장이 1년 단위로 리그 운영단체에 위탁 운영되기 때문에 팀당 250만~400만원씩 내고 정식 리그에 가입하지 않으면 사실상 이용할 수 없다. 어렵사리 구장을 빌리더라도 비싼 임대료가 문제다. 난지 구장 등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극소수 야구장을 제외하고는 1시간45분 사용료가 25만원에서 30만원을 호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년 연말이면 구장을 확보하기 위해 리그 운영자들끼리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야구동호회원 전병희(29)씨는 "골프 부킹은 '빽'이라도 쓰면 가능하지만, 야구장 부킹은 국회의원이 와도 안 된다는 게 정설"이라며 "국내 수요에 맞게 좋은 시설을 갖춘 구장이 넉넉하다면 왜 해외까지 나가서 야구를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아마추어 야구 붐을 무시한 채 무조건 관내 체육부지에 축구장만 짓고 보는 일부 지자체들의 타성에 젖은 행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비해 해외원정 야구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팔라우 3박5일 항공ㆍ숙박료 등 포함 1인당 140만원)한 데다, 야구 외에도 다른 볼거리들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 말까지는 중국, 태국, 대만 등으로 보다 저렴한 비용의 프로그램이 개발될 예정이어서 해외원정 야구가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