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어제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 형식을 통해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요지는 지난달 9일 중국 베이징 남북비밀 접촉에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 우리 당국자 3명이 참석, 6월 하순 판문점, 두 달 뒤 평양, 내년 3월 서울 핵 안보정상회의 기간 등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위한 장관급 회담을 5월 하순에 열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우리 당국자들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측이 사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절충방안을 제시하고 돈봉투까지 내놓았다는 주장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우리의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일축했지만 남북간 진실게임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진위를 떠나 비밀접촉 내용을 일방적으로 폭로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남북 관계사에서는 물론 세계 외교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폭거다. 상호신뢰와 비밀 유지를 전제로 이뤄지는 접촉 내용을 이런 식으로 까발린 것은 남북간에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신뢰기반을 무너뜨린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하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6자회담 재개 분위기 조성을 위한 남북관계 개선 등의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왜 이렇게 막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 우리 군 부대 일부에서 김정일 김정은 부자의 사진을 사격훈련 표지판으로 사용한다는 보도와 대북전단지 살포 등의 '반공화국 적대시정책'에 자극 받았을지 모른다. 지난달 30일 이명박 정권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고 한 북측 국방위 대변인 성명도 같은 맥락일 가능성이 크다.
경위야 어쨌든 정부가 대북 압박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국면 전환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지지기반인 보수진영의 강력한 견제에도 그런 시도를 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북측의 어이없는 폭로로 매우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게 됐다. 남북관계 관리의 총체적 실패가 근본적 원인이겠지만 지혜롭게 수습해 남북관계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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