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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서울보훈대상/ 나라사랑 고귀한 뜻, 이웃 사랑으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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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서울보훈대상/ 나라사랑 고귀한 뜻, 이웃 사랑으로 승화

입력
2011.06.0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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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군경 권오수씨/ 상이군경 취업 알선… 자녀에 장학금

권오수(權五壽ㆍ65)씨는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의 대부(大父)로 불린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이들의 어려움을 보듬고 문제를 해결하는 든든한 울타리이자 후원자가 돼왔다.

상이군경회 소속인 권씨는 1981년부터 현재까지 44명의 취업을 알선했고 30명의 사업 자금을 융통하는데 도움을 줬다. 또한 생활고 등으로 사회에서 일탈하는 회원 4만9,257명을 선도하고 유공자로서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는데 앞장섰다. 7억4,717만원 상당의 성금과 현물을 모아 불우회원 7만3,125명에게 전달했고 중ㆍ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유공자 극빈자녀 174명에게 5,845만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회원들의 각종 민원 225건을 접수해 관련 행정기관에 접수ㆍ처리하는가 하면, 존경받는 국가유공자의 상을 정립하기 위해 유공자를 사칭하며 금품을 강요하고 물품을 강매하는 일반장애자 273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권씨는 '귀신 잡는' 해병 출신이다. 해병대 청룡부대에 근무하며 64년부터 1년4개월간 월남전에 참전했다. 복부 관통상을 입고 의병 제대했지만 젊은 시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 쳤던 군인정신과 투철한 애국심은 여전히 불타고 있다. 이제는 그 마음가짐이 이웃사랑과 사회봉사에 발벗고 나서는 원동력으로 승화돼 소중한 결실을 맺고 있다.

그는 다섯 차례 서울시장, 마포구청장 표창을 받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도 적극적이다. 2003년 서울시립상이군경복지관장을 지내면서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활성화했다.

▦전몰군경유족 김자야씨/ 호국 부녀봉사회 결성 장애인들 도와

6ㆍ25전쟁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남편은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렸다. 홀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져 간호를 도맡았다. 내 가정에 벌어진 일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남을 돕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김자야(金玆野ㆍ65)씨 얘기다. 남들이 말로 할 때 그는 조용히 하나 둘 실천으로 옮겼다. 1997년 이웃 40여명과 봉사회를 조직해 1주일에 두 차례씩 수원보훈원에서 보훈가족의 진료를 돕고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의 진정성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02년에는 6ㆍ25유자녀 호국 부녀 봉사회를 만들었다. 2003년부터 장애인시설인 천사의 집을 매달 방문해 청소와 빨래, 목욕 등 온갖 허드렛일을 묵묵히 해나갔다.

김씨는 2003년 12월 전몰군경유족회 서울 성동구 지회장을 맡으면서 구 조례를 제정하는데 앞장서 구내 모든 보훈가족이 월 2만원의 보훈예우수당을 받도록 기여했다. 구내 봉사회를 조직해 살림살이가 어려운 회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집안일을 돕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그간의 공로로 2007년 성동구청장으로부터 1,000시간 이상 봉사활동자에게 수여하는 금장 봉사상을 받았다.

쉼 없는 이웃사랑은 배움의 열정으로 발전했다. 지식을 갖춰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2001년 보훈병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이수했다. 2007년 성덕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증을, 2009년에는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땄다.

▦공상군경유족 우갑선씨/ 네 손가락의 장애 딸 피아니스트로 키워내

우갑선(禹甲仙ㆍ56)씨의 어릴 적 꿈은 나이팅게일이었다. 1975년 서울국립원호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넌 누구에게 시집갈래"라고 입버릇처럼 물어보셨다. 그 때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고통받고 아픈 사람에게 시집갈 거야."

간호사와 환자로 남편을 만났다. 국가유공자 1급 척수장애인. 아내의 정성과 보살핌 덕에 남편은 국제척수장애자체육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메달을 휩쓸었고 81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85년 낳은 딸은 손가락이 4개뿐이었다. 주위에서는 "1급 장애인인 남편과 아이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만류했지만 우씨는 그 누구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딸을 일부러 대중목욕탕에 데리고 다니며 딸의 모습을 당당하게 세상에 내보였다.

딸 희아는 6살 때 피아노 앞에 앉았다. 관절에 힘이 없는 4개의 손가락으로는 연필조차 잡을 수 없어 고통스러워 했지만 우씨는 눈물을 되삼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딸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다 허리디스크, 유방암, 갑상선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병마에 굴하지 않고 오로지 딸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뒷바라지를 했다.

현재 희아는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장애인들에게 꿈을 안겨주는 유명 피아니스트다. "없는 것에 슬퍼하지 말고 남아있는 부분을 최대한 극대화시켜 기쁘게 살자"며 엄마를 다독이는 착한 딸이다. 우씨는 "사람들도 딸의 모습을 보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무공수훈 박종우씨/ 태극기 보급·안보 강연, 애국심 고취 운동 앞장

박종우(朴鍾禹ㆍ83)씨는 6ㆍ25전쟁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1948년 입대해 6개월간 빨치산阿珦邦鰥?투입됐고, 50년 6ㆍ25전쟁이 시작되자 개전부터 종전 때까지 치열한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후인 54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각급 부대에서 소대장, 중대장, 참모, 대대장을 역임하고 76년 중령으로 전역한 뒤 예비군 대대장을 맡아 향토방위와 예비전력 양성에 헌신했다.

박씨는 2003년 무공수훈자회 서울 강동구 지회장을 맡아 회원들의 복리증진과 봉사활동에 힘썼다. 국경일이면 태극기를 구입해 나눠주며 가정과 차량에서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라사랑과 호국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했다. 2010년 서울시에서 6ㆍ25참전용사에게 보훈명예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조례를 만들었는데 무공수훈자들이 대상에서 누락되자 시의회와 관계기관을 수 차례 방문, 설득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그는 또 불우한 형편의 고령ㆍ독거회원들을 앞장서 발굴해 관계기관에서 물질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가 하면, 매년 두 차례 회원들의 전적지ㆍ유적지 순례행사를 개최해 조국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양하는데 일조했다.

박씨는 특히 무형의 정신전력인 안보의식을 고취하는데 중점을 둬 매달 1회 이상 안보강연을 실시, 강사를 직접 초빙하는 등 안보관 확립과 친북 행위 근절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시장, 무공수훈자회 중앙회장 등으로부터 다수의 표창을 수상했다.

▦4ㆍ19혁명부상자 이용곤씨/ 재중동포에 장학금 지원, 신익희선생 기념 사업도

이용곤(李溶坤ㆍ76)씨는 4ㆍ19혁명 때 시위에 참가했다가 왼쪽 대퇴부에 총상을 입었다. 1957년부터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 상근부회장으로 무상 봉사하고 있다. 2002년 서울 효자동에 있는 해공 신익희 선생의 고택을 구입해 서울시문화재로 지정 받았고 보훈처와 서울시, 일반인 모금을 통해 주변의 가옥 5채를 추가로 구입하고 있다. 해공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장학사업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89년 종세육영재단을 설립, 연인원 983명에게 6억8,754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96년 4ㆍ19육영사업회를 만들어 2002년까지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1,384명의 초ㆍ중ㆍ고교생에게 3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금 지원은 재중동포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2001년 4ㆍ19동포후원장학회를 설립해 연변자치주 내 연길, 용정, 도문, 화룡, 하얼빈 등지의 조선족소학교와 중학교에 11회에 걸쳐 6,7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씨는 또 중국 동포사회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4ㆍ19장학회 회원들과 동포 자녀들의 자매결연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06년에는 어릴 적 양손이 잘리고 얼굴에 심한 흉터를 입었던 연길 거주 김연화양을 국내로 초청해 의수를 지원하고 무상으로 성형수술을 해주는 등 새로운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줬다. 이 밖에도 중국 각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 노인들을 초청해 수시로 위문잔치를 벌이며 민족의 정체성을 고양하고 있다.

▦심사평/ 유공자 희생 기억하는 계기 되길…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서울보훈대상'이 올해로 38회째를 맞이하였습니다. 먼저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을 지속적으로 위로, 격려하고 있는 한국일보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출된 공적서를 하나하나 살펴보니, 추천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자신 또는 소중한 가족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강한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우리사회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앞장서서 봉사하며 국가유공자 또는 그 유가족으로서 명예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여 휴전상태를 유지해온 지 61년이 되었지만, 북한은 아직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상황을 통해 이 땅에서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온 국민들은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때와 다른 마음가짐으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으며 더욱더 호국의지를 다지고,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존경과 예우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전쟁기념관 경영기획실장 김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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