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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사상연구원 15일 재조명 학술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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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사상연구원 15일 재조명 학술회의

입력
2011.06.0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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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선승 경허(1846~1912) 스님은 근대 한국의 선불교를 중흥시킨 주역이다. 조선 시대를 지나면서 지리멸렬하던 선풍을 다시 일으킨 그의 업적은 양대 제자 만공(1871~1946)과 한암(1876~1951) 스님을 통해 더욱 다져졌다. 학자들은 이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선이 오늘날처럼 부흥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경허 스님은 특히 서른 살 아래인 한암 스님을 지음(知音)으로 불렀다. 해인사를 떠나면서 한암 스님에게 준 한시에서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겠는가. 한암이 아니면 내 누구와 더불어 지음자(知音者)가 되리오”라고 말했다.

경허와 한암 스님의 선사상과 사제 관계를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15일 한국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다. 경허 스님의 두 제자 만공과 한암 스님이 서로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경허 스님의 제자들이 한국 선불교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도 살핀다. 간화선 전공자 변희욱(서울대 강사), 한문학자 이상화(고려대 교수), 불교 사상 전공 김광식(동국대 연구교수), 한암 사상 연구자 윤창화(민족사 대표)씨의 발표에 이어 청중도 참여해 토론을 벌인다.

한암 스님은 전형적 선승이면서도 경학에 밝았고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 이번 학술회의는 계정혜(戒定慧ㆍ계율 선정 지혜)를 모두 아울렀던 한암 스님에게서 수행자가 나아갈 바를 찾는 자리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불교의 선풍은 그런 경지에 못 미치고 있다.

경허 스님에서 한암 스님으로 이어진 선풍에 대해 발표하는 변희욱씨는 두 사람을 교외별전(敎外別傳)과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대표되는 조사선의 기치를 곧추세우려 했던 선승으로 평가한다. 조사선이 선문답을 통해 그 자리에서 단박에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이라면 조사선보다 나중에 등장한 간화선은 스승이 준 화두를 참구해 깨치는 수행법이다.

경허 스님의 양대 제자, 한암과 만공 스님을 비교하는 주제는 김광식씨가 발표한다. 김씨는 치열한 수행과 철저한 교화행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지만 종단이나 교육, 개혁에 대해서는 서로 인식이 달랐다고 본다. 한암 스님은 전통을 중시하고 대중 승려를 고려해 수행 풍토를 진작하려고 한 반면, 만공 스님은 참선 유일주의, 엘리트주의를 통해 불교 정화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는 오대산 월정사와 한암문도회가 운영하는 한암사상연구원이 주최한다. 월정사 산내 암자인 상원사는 한암 스님이 생애 마지막 27년을 보낸 곳이다. 1925년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다가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의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으로 들어가 두문불출 수행에 전념하다 앉은 채로 입적했다. 그가 6ㆍ25전쟁 중 상원사를 지킨 일화는 유명하다. 1ㆍ4후퇴 때 국군은 상원사가 인민군 근거지로 쓰일까 봐 태워 없애려 했다. 한암 스님은 “법당에 앉아 나도 함께 불사르라”고 했고 국군은 그 기개에 감탄해 문짝만 떼어 불사르고 후퇴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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