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병합 100주년, 자민당 장기정권 붕괴,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태, 한일도서협정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획을 긋는 사건들을 재임기간에 모두 겪게 돼 바쁘기도 했고, 행복했다.”
3년2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6일 귀국을 앞둔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는 1일 특파원과의 간담회를 갖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권 대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자유무역협정(FTA)체결에 보다 적극적이며, 중국 입장에서도 한일 FTA가 먼저 체결될 경우 부담스러운 입장에 놓인다”며 “이런 역학관계로 볼 때 한일 FTA협상과 함께 한중 FTA 협상을 병행할 경우 보다 많은 실리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TA를 경제문제가 아닌 외교전략의 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권 대사는 “부임 후 일본의 정ㆍ관계, 경제계 유력인사와의 폭넓은 만남을 통해 500명 가량의 인사들에 대한 성격과 행동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며 “향후에도 이 자료를 활용한다면 대일 외교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사는 “2008년 경제위기 시 일본과 300억달러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관련 담당자들과 굴욕에 가까운 만남을 가졌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며 “안정적이고 부강한 국가가 왜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권 대사는 독도 문제와 관련된 한일외교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그는 “우리 국민에게는 여전히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의식과 분노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적으로 성장한 만큼 좀 더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고 일본을 상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 대사는 “독도를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자극적인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며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독도방문 등을 요구하는 단체도 있지만, 이 역시 정치 쟁점화하려는 일본 보수세력에 반발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권 대사는 당초 31일로 예상된 조선왕실의궤 반환에 관한 한일도서협정 발효가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정으로 다음 주중 각의를 거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며 “발효와 동시에 반환준비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임 직후부터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대비, 일본 정부 관계자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며 일본측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역사상 가장 충실한 내용의 총리담화와 함께 한일도서협정 체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최근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 중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에게 후쿠시마(福島)산 오이 등을 먹을 것을 권한 논란에 대해 권 대사는 “이 대통령이 센다이(仙台)에 있을 때 일본측이 ‘후쿠시마 피난지에서 간 총리가 후쿠시마산 야채를 몇 개 먹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고 해명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