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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낯익은 세상' 출간한 황석영/ "내 문학도 만년의 문턱…폐허에 남은 연민을 위한 글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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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낯익은 세상' 출간한 황석영/ "내 문학도 만년의 문턱…폐허에 남은 연민을 위한 글 쓸 것"

입력
2011.06.0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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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감옥에서 나온 뒤 10여년간 거의 매년 장편을 써왔는데 재작년 무렵부터 어떤 위기감을 느꼈다. 매너리즘이 찾아온 것 같았다."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역사와 우리 현실에 밀착해 왔던 한 시대의 리얼리스트 황석영(68)씨는 지난해 10월께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을 찾았다. 스스로 느낀 문학적 위기감에다 "2년간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욕 많이 먹었다"는 얘기처럼 문학 바깥에서 벌어진 구설도 한몫 했을 터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과의 중앙아시아 순방 동행으로 인한 변절 논란, 2010년 <강남몽> 의 표절 시비 등을 겪으며 그는 또 다른 문학과 인생의 변곡점을 찾고 싶었을지 모른다.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의 추천으로 그가 찾아간 곳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리장(麗江). 해발 2,400m의 고지대로 바깥 문명과 단절됐다 원나라 침입으로 중화권에 흡수된 곳이다. 지금도 원 시대에 세워진 700여년 전의 고성이 남아 있는, 시간이 더디게 흐른 듯한 이곳은 현대 문명의 속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황씨가 한달 반 동안 리장에 머물며 얼개를 짜고 집필을 시작한 작품이 <낯익은 세상> (문학동네 발행)이다.

책 출간에 맞춰 황씨는 기자들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았다. 1일 리장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황씨는 "이번 소설을 통해 우리 문명을 돌아보고 싶었다"며 "집필 과정에서 구제역 파동,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이 터졌는데 근사하게 만들었다는 우리 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고, 사람들이 위태로운 벼랑 끝에서 살아가는 게 한눈에 보여 소설의 의미를 풍부하게 했다"고 말했다. 올해 3, 4월 제주에서 집필을 마무리한 이번 작품은 신문이나 잡지 연재 없이 완성한 그의 첫 전작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도시의 찌꺼기들이 집결되는 쓰레기매립지인 꽃섬을 배경으로 폐품 수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를 다룬다. 딱부리라는 별명을 가진 열네 살 소년이 엄마와 함께 도시의 역겹고 어두운 끄트머리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1980년대 악명 높았던 난지도가 실제 배경이지만 소설은 시공간을 추상화하고 있어 현대 문명 일반에 대한 비판적 알레고리로 읽힌다. 황씨는 "80년대 난지도에 대한 르포가 많이 나왔는데 우리 삶의 상징으로 이를 다루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문인들끼리 나눈 적이 있었다"며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는 "카프카 소설을 보면 현실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그리는데 사건과 사물의 배치가 엉뚱해 저절로 추상화가 된다"며 "그 추상적 세계가 현실을 반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쓰레기 줍기로 연명하는 사람들의 거칠고 강팍한 생활을 박진감 있게 묘사하는 그의 리얼리즘적 솜씨는 여전하다. 더불어 그 반대 편에서 도깨비불이라는 정령의 세계를 그려 내는 서정성도 돋보인다. 도깨비불은 실성한 여인과 아이들만 볼 수 있는데 우리 문명이 잃어버린,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는 세계로 소설의 핵심 모티브다. 소설은 이런 신비롭고 서정적 분위기로 황량한 사막에서 들풀처럼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동화로도 읽힌다.

62년 고교 시절 '입석 부근'으로 등단한 황씨는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문학 안팎의 위기감 속에서 나온 이번 소설은 그 긴 문학적 여정에서 새로운 문턱을 넘어가는 단계에 있는 작품이다. 그는 이를 만년문학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환은 만년문학이 치매의 문학이라 했는데 그럴듯했다. 치매는 버리거나 남겨야 할 기억을 재정리해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훈은 만년문학의 특징을 배회자, 즉 배려 회한 자성이라고 했는데 좋은 얘기다. 내 문학도 이제 치열한 전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페허에 남아 있는 연민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최근 아들이 했다는 부탁도 소개했다. "이제 사나운 형님이 아니라 할아버지처럼 돼 달라고 하더라. 잘난 척하지 말고, 술자리에서도 혼자 말하지 말고, 상대방 얘기도 듣고. 좀 비켜서 있으라는 것이다. 후배들 먹을 것도 남겨 놓고(웃음)."

할아버지로서 삶을 돌아보는 만년 문학을 시도하지만 그의 천성적 기질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그는 이 대통령의 순방 동행 때 제기한 알타이문화연대에 대해 "남북과 몽골, 중앙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지역적 연대를 형성하자는 것으로 노무현 정부 때부터 나왔던 얘기"라며 "흐지부지돼 결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관리 시스템에 다시 퐁당 빠진 게 아닌가 안타까운데 다음 정권에서 또 한번 시도해 볼까 싶은 생각도 있다"며 웃었다. 그는 <강남몽> 표절 시비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참고 자료에 출처를 붙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전례가 없었다"며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실수한 것이고, 당시에도 실수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리장=글ㆍ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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