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를 '편집'위에 올려놓으세요. 아래로 죽 내려오다 보면 '파일'창이 보이시죠. 거기서 클릭하세요."
17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연봉 경로당 한 켠, 컴퓨터 한 대를 두고 일흔다섯살 이성진씨가 동갑인 황한규씨 옆에 앉아 'RC꾸미기'라는 사진편집 프로그램 작동법을 설명했다. 느릿느릿 오른손 검지로 마우스를 누른 황씨가 "선생님 드디어 그림이 떴네요"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성진씨는 마포구 소속 컴퓨터 강사다. 일주일에 이틀 경로당을 찾아 두 시간씩 황씨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 수업과목은 '인터넷 검색' '한글' '홈페이지 제작'. 2009년부터 마포구에서 대한노인회 마포구지회에 위탁해 컴퓨터 활용능력을 가진 노인 49명을 선발해 또래 노인에게 수업을 진행하는 '컴퓨터 강사단' 멤버다. 매년 5월부터 11월까지 관내 경로당을 찾아 1대1일 강의를 시작한 게 올해로 3년째다.
이씨가 다루는 프로그램은 10개가 족히 넘는다. 워드, 엑셀 등 문서작성부터 포토샵 같은 사진 및 출판 편집, 프리미어를 포함한 영상편집 프로그램까지 다양하다. 모두 강사 시작 전 2년 간 익힌 능력이다.
70대인 그가 컴퓨터 활용에 도가 트게 된 건 40여년간 영상홍보물 제작업체를 운영한 경험이 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는데 기업 홍보에 관심이 있었죠.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내 손으로 홍보물을 만들자는 생각에 영상을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를 차리게 됐습니다."
국영기업체 정부기관 등에 납품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사업은 IMF 경제위기 때 결정타를 맞고 4년 뒤 문을 닫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기기로 전환하던 중 회사가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 실패는 새로운 노년을 여는 밑거름이 됐다. 당시 직원들이 사용하던 각종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어깨너머로 익혀왔던 터. 그는 컴퓨터로 밥벌이를 하며 여생을 살자는 생각으로 2008년 문서 및 프리젠테이션 작성 능력을 요하는 정보기술(ITQ)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1년 뒤 '노인 컴퓨터 강사단'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이씨는 "영상에 대한 이해는 있었지만 프로그램 사용법을 몰라 밤새 책과 씨름했다"며 "특히 이해가 안 돼 도움을 요청했던 컴퓨터 수리업체 직원 등 젊은이들의 핀잔을 감수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도 이젠 어엿한 컴퓨터 전문가가 됐다. 더불어 마포구청 iTV 객원기자 생활 3년에 이달부터는 서울복지재단에 '시민고객기자'로서 매달 두 건의 복지 관련 기사도 쓰기 시작했다.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로 촬영과 인터뷰, 더빙 등 전업인 영상홍보물 제작경험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과거 종사했던 일을 컴퓨터를 이용해 다시 시작하게 되니 자신감도 생기고 노년이 행복해졌습니다. 방에 누워 힘없이 누워 있거나 공원을 거니는 모습은 상상하기 싫어지네요."
그는 요즘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컴퓨터 강사단과 함께 저렴한 값에 컴퓨터를 가르치고 그 수익을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김현수 기자 ddacku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