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정ㆍ관계 로비가 낳은 부실 투자였던 것일까. 지난해 6월 포스텍과 삼성꿈장학재단이 각각 500억원씩을 투자해 부산저축은행의 유상증자 과정에 참여했던 구체적 경위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합리적 판단에 따른 투자였다기보다는 모종의 청탁이나 압력이 있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당시는 이미 저축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우려가 제기됐던 시점이라,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할 학교법인과 장학재단이 손실 위험을 무릅쓰고 거액을 투자하게 된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그 동안 제기돼 왔다.
열쇠를 쥔 핵심 인물은 부산저축은행의 '제2 브로커'로 알려진 박태규씨(해외 체류 중)다.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박씨가 문제의 유상증자를 성사시키기 위해 여권 핵심 실세 등 정치권 인사들을 접촉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텍 등의 무리한 투자 경위를 밝힐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등 유력 인사가 많이 다니는 소망교회 신도인 박씨는 한나라당 주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정치권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박씨는 부산저축은행의 또 다른 브로커 윤여성(56ㆍ구속)씨가 접촉하기 쉽지 않은 고위층 인사들을 전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로서는 그만큼 부산저축은행의 정ㆍ관계 로비 수사의 핵심을 파고드는 데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박씨가 검찰 수사 직전 해외로 도피해 버려 당분간은 직접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검찰이 확보한 박씨 관련 진술이 사실이라 해도, 과연 박씨의 로비 대상이 누구였는지, 해당 정치인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등을 파악하기 어렵고, 따라서 당분간 검찰 수사에 진전이 있을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는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박씨의 입이 유일한 단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선 KTB자산운용이 조성한 사모펀드를 통해 포스텍과 삼성꿈장학재단의 투자가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는 박연호(61ㆍ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 김양(59ㆍ구속기소) 부회장, 김민영(65ㆍ구속기소) 부산ㆍ부산2저축은행장 등과 광주일고 동문이다. 게다가 삼성꿈장학재단의 기금관리위원이기도 하다.
검찰은 이와 관련, 장 대표가 중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초기 참고인 조사를 했으나 그는 "부산저축은행이 분식회계를 통해 작성한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바람에 나도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이 부분과 관련해 박 회장 등 부산저축은행 임원들을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기소했고, 장 대표 등 다른 인물의 연루 정황을 추가로 살펴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지난해 6월 이후 대출 내역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의 유상증자를 돕는 대가로 여권 유력 정치인이 경북 포항 소재 모 업체에 대출을 해 달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첩보를 최근 입수, 진위 여부를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문의 1,000억원 투자가 또 하나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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