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들 눈치가 보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란에 대처하는 보건복지부의 태도가 이렇다.
정부는 지난달 열린 '관계부처 합동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가정상비약의 휴일ㆍ심야시간대 구입불편 해소 방안을 5월 말까지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31일까지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안을 마련해놓고도 대한약사회(약사회)의 의견을 기다리느라 입장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현재 복지부는 장관고시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방침을 정하려 복수의 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현행 약사법상 일반의약품은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판매할 수 없으나 장관이 고시하는 '제한적 특수장소'에서는 가능하다. 예를 들면, 현재도 산간지역이나 열차,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선 이를 근거로 상비약이 판매된다. 복지부 내에선 특수장소의 범위를 확대해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의약품만 팔도록 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특수장소의 범위를 편의점 등 24시간 업무가 가능한 슈퍼로 확대하고, 판매약품은 진통ㆍ해열ㆍ소염제로 제한해 약국이 문을 닫은 평일 심야시간이나 공휴일 등에만 판매하는 안을 우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런 방안을 마련해놓고 약사회의 의견을 기다리다가 결국 발표시기를 미뤘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사회에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하고 독촉했지만 오늘(31일) 오후에야 안을 가져왔다"며 "약사회의 안을 검토한 뒤 부처 방침과 발표 일정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 시기는 이르면 다음주 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약사회가 제시한 안은 ▦자정 무렵까지 5일에 한번 꼴로 돌아가며 문을 여는 '당번약국 5부제'를 시행해 ▦현행 60여 곳인 심야응급약국을 4,000곳으로 확대 운영하겠다는 것이어서 복지부의 방안이나 시민사회의 요구와는 동떨어진다. 복지부가 과연 어떤 절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그간 복지부는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약사회를 거론하며 곤혹스러움을 내비쳤다. 진수희 장관도 여러 차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약사회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현행 약사법상 (특수장소를 확대하더라도) 반드시 약사들이 편의점에 약을 대줘야 하기 때문에 약사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약사들의 동의 없이는 제도개선을 추진할 수 없다고 고백한 셈이다.
진 장관은 또 "두통약도 만취상태에서 먹으면 부작용이 심각하다는데 (슈퍼에서 약을 팔면) 복약지도가 제대로 안될 것"이라며 "약물 오ㆍ남용에 대한 안전도 담보하면서 국민불편을 해소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 남은경 부장은 "지금도 약국에서 상비약을 살 때 대부분 특별한 복약지도를 하지 않는다"며 "복지부가 당장 약사들의 이익을 신경 쓰느라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약국 외의 곳에서 일반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도록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방안에도 고개를 내젓는다. 복수의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라 개정안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약사회와 국회에선 고개를 내젓고 청와대는 (의료산업선진화 방안으로) 밀어붙이니 복잡한 문제"라고 토로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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