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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 유가족 출신 상담사 1호 박인순씨/ "같은 아픔 지닌 이들과 울며 웃으며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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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 유가족 출신 상담사 1호 박인순씨/ "같은 아픔 지닌 이들과 울며 웃으며 치유"

입력
2011.05.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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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송지선, 가수 채동하, 전직 프로축구 선수 정종관…. 지난 9일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다. 잇따른 자살 소식에 유독 마음이 바빠진 이가 있다. '생명의전화' 상담사 박인순(57)씨다. 그는 "대중의 관심은 고인에 쏠려있지만 남은 가족들이 특히 보호받아야 한다"면서 "그들은 극도로 불안한데다 죄책감이 클 것이기에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30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생명의전화에서 그를 만났다. 단정한 차림에 인자한 미소, 여느 어머니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는 자살자유가족 출신의 상담사 1호다. 주변에 자살을 택한 이가 있다는 사실을 가급적 꺼리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환부를 드러낸 채 마음을 닫아버린 자살자유가족들과 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2009년 8월3일, 아들이 갔어요. 2일이 제 생일이거든요. 기일이 생일하고 겹쳐서 이제 제 생일은 없지요." 단 둘이 살던 외아들이었다. 좋아하는 과목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똑똑했다. 명문대에 진학한 아들은 그러나 어머니 생일 다음날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몸이 약해 군 입대가 계속 미뤄지면서 또래와 멀어져 고독감을 견디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을 거라고 했다. 박씨는 "중학생부터 우울증 증세를 보였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잘못"이라며 "죽기 전날, 영화 '매트릭스'를 함께 보자고 했는데 피곤하다고 잠든 게 아직도 후회된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은 멈췄다. "눈뜨고 숨쉬고 있을 뿐 살아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아이와 같이 그린 미래가 송두리째 날아가면서 아무 의지가 생기지 않았죠." 장례를 치르자 슬픔이 밀려왔다. 그 뒤 몇 달은 외로움과 힘겹게 싸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지도 못했다. 누군가 죽었다는 뉴스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자신의 직업(공개되길 원치 않았다) 특성상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박씨를 더 옥죄었기 때문. 그러다 지난해 5월 신문에서 생명의전화의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을 접했고, "살려면 어디에든 하소연해야겠다"는 생각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모임과정 중에 맞은 아들의 1주기는 생각보다 덤덤했고, 아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마음이 괜찮았다. 그는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과 울고 말하면서 치유되기 시작했다"며 "아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첫걸음이었다"고 했다.

달라진 그의 주변에 자살자유가족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심장마비인 줄 알지만 내 딸도 사실은…" "내 사위도…"라며 상담을 받으려고 했다. 같은 처지라는 공감대와 아픔을 이겨낸 모습에 신뢰를 한 것이다.

그리고 4월, 생명의전화에서 본격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대상은 주로 유가족이지만 긴급할 땐 일반 위기 전화도 받는다. 최근에는 고아로 자란 한 청년이 "죽겠다"고 전화를 걸었다가 "난 더 이상 아들이 엄마라고 불러주지 않아 슬프다. 나를 엄마라고 불러봐라"는 박씨의 답에 웃으며 전화를 끊은 일도 있었다. 전화로 유가족들에게 건네는 말은 일상적인 게 대부분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유가족들의 목소리도 차분해진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런 박씨도 지난 5월은 참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이 아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이렇게 아들 곁에 한 걸음 가는 것 아니겠느냐"며 "수치심 때문에 숨어있는 유가족들이 나를 통로 삼아 밖으로 나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상담은 함께 울어주는 거지, 특별한 게 아녜요. 비밀만 지켜준다면요. 제2, 제3의 유가족 상담자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 자살자 유가족 실태, 작년에만 9만명 생겨…죄책감·수치심에 '은둔'

자살자유가족(한 사람의 자살로 인해 정신적으로 직접적 영향을 받는 가족)은 숨어있다. 자살자 1명당 유가족이 6명 발생한다는 연구결과에 비춰보면, 지난해만도 국내에는 자살자유가족이 8만8,332명 생겼다. 지난 10년간 자살자유가족 수가 60만명을 넘었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자살자유가족을 보기란 쉽지 않다. 유가족 자조모임이 가장 활발하게 열리는 생명의전화에서도 지난 2년간 참가자가 20명이 채 안될 정도다. 죄책감과 수치심 무력감 등이 세상으로 나서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살 고위험자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한 대책도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서울 인천 경기 3곳의 정신보건센터와 생명의전화가 유가족들이 모여 마음을 터놓는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고, 지난 4월부터 생명의전화가 유가족 대상 전화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김혜경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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