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라."
그랜드슬램 타이틀(호주, 프랑스, 윔블던, US오픈)만 16차례 정복한 로저 페더러(29ㆍ랭킹3위ㆍ스위스)가 울분을 토해냈다.
명색이 '테니스 황제'인 자신을 제쳐두고 노박 조코비치(23세ㆍ2위ㆍ세르비아)의 연승행진과 라파엘 나달(24세ㆍ1위ㆍ스페인)의 프랑스오픈 6연패 가능성에만 관심을 쏟는 언론을 향해 터뜨린 항변이다. 응당 자신에게 쏟아져 할 스포트라이트가 빛을 잃고 조코비치와 나달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형택 테니스아카데미 이사장은 "자신을 한물간 선수로 취급하는 언론에 따끔한 일침을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더러가 '저항'이라도 하듯 프랑스 오픈에서 언터처블 모드로 일신하면서 조코비치의 연승가도에 최대 걸림돌로 떠올랐다. 페더러는 남자단식 4강행을 앞두고 가엘 몽피스(25ㆍ9위ㆍ프랑스)와 31일(한국시간) 오후 일전을 펼쳐야 하지만 역대전적 5승1패에서 보듯 페더러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이에 반해 조코비치는 상대의 기권으로 힘들이지 않고 4강에 선착했다. 조코비치는 이로써 시즌 41연승을 수확, 존 맥켄로의 한 시즌 역대최다인 42연승(1984년)에 한 경기만을 남겨놓았다. 따라서 페더러와 준결승에서 이기면 맥켄로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조코비치는 27년만에 찾아온 절체절명의 순간에 페더러를 꺾어야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셈이다.
조코비치는 지난해 11월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월드파이널 준결승에서 페더러에 0-2로 패했다. 하지만 12월 열린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2연승을 시작으로 올 시즌까지 43연승 불패가도를 달려왔다.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라이벌관계는 13승9패로 페더러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하지만 올 시즌 준결승에서만 3번 만나 모두 조코비치가 웃었다. 페더러는 프랑스오픈 개막 기자회견에서 "조코비치의 상승세를 막을 선수가 없을 것 같다"며 새로운 황제 등극에 몸을 낮췄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페더러의 기량도 예전의 날카로움을 회복했다. 페더러는 실제 이번 대회를 통해 28경기 연속 그랜드슬램대회 8강 진출이라는 새 기록을 썼다. 앞서 지미 코너스가 1973~83년 동안 세운 27경기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특히 칼날 같은 스트로크가 살아나면서 무실세트 행진을 벌이고 있는 것이 조코비치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조코비치는 그러나 이미 랭킹1위라는 보너스를 챙겼다. 7년 동안 페더러와 나달이 주고받던 챔피언 자리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비록 페더러가 조코비치의 연승을 저지하더라도 나달이 우승하지 못하면 랭킹1위는 조코비치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