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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감세 철회와 한나라당 활로

입력
2011.05.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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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완고한 보수 인사는 '배신'이라고 했다. 그는 심지어 "MB가 좌파 운동권에 주눅이 들어 김대중ㆍ노무현의 아류가 됐다"는 독설까지 쏟아냈다. 4ㆍ27 재보선 참패 후 한나라당 신주류가 이끌고 있는 경제ㆍ복지정책의 급선회에 대한 보수 일각의 당혹감은 이렇게 표출되고 있다.

존재감조차 미미했던 황우여 의원이 느닷없이 원내대표로 부상해 '반값등록금'을 거론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재보선 참패의 충격에 내년 4월 총선의 압박감이 겹쳐져 허둥거리는 것처럼 비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한나라당 신주류는 배신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의외로 뚝심 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엊그제 보수 인사들의 성토가 이어졌던 국회의사당의 다른 한 켠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총은 신주류의 긴박한 모색이 단순한 임기응변이 아니라, 나름대로 민심을 담아내려는 근본적 고민을 담고 있음을 보여줬다. MB 측근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이미 감세 철회론을 일축하며 'MB노믹스'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밝힌 터였다. 하지만 격론 속에 진행된 의총은 반대로 고소득자 소득세 감세 철회를 사실상 확정하고, 논란의 중심이었던 법인세 추가 감세 철회에도 어느 정도 공감을 모으는 데까지 나아갔다.

신주류의 'MB노믹스' 대수술

한나라당은 MB노믹스에 따라 2008년 9월 정기국회에서 야당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소득세ㆍ법인세 인하' 감세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3년 만에 그걸 스스로 뒤집으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 신주류의 정책 선회는 여당의 선거패배 후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극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극심한 경제 양극화와 잇단 비리 스캔들로 이명박 정권을 떠나는 민심이 MB노믹스의 전면 수정을 강제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 살리기'를 모토로 내세운 MB노믹스의 근간을 이룬 생각은 트리클다운이펙트(trickle-down effectㆍ적하효과)였다. 물이 넘치면 바닥을 적시는 식으로,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 주면 고용과 소비 경로를 통해 궁극적으로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중산ㆍ서민에게 돌아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레이건과 부시 공화당 행정부를 관통하며 친기업 정책을 뒷받침한 이 주장의 허구성은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광범위한 비판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낸 '실효법인세율, 기업의 투자 그리고 고용에 관한 실증 분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다양한 분석 결과 지난 14년 간 대기업 실효 법인세율은 하락했지만, 대기업 순투자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입증됐다.

일부 관료들은 이밖에도 경쟁국들과의 '조세경쟁'을 들며 법인세 추가 감세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법인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2010년 현재 2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9%보다 낮아 추가 감세까지 정당화하기엔 어색한 상황이다.

아집 버리고 대세에 따르길

당내에서는 신주류의 행보를 MB와 구주류에 대한 이반, 또는 친이에 대한 친박+소장파의 공세로 보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 의총에서는 "부자감세라는 야당의 프레임에 갇혀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략적 시각을 벗어나서 볼 때, 한나라당 신주류의 MB노믹스 수정은 자의든 타의든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고질적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을 본격적으로 수용하려는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권은 요즘 총체적 위기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이럴 때 섣부른 아집으로 대세를 거스르려 하다간 더 큰 패착에 빠지기 십상이다. 박정희 정권은 부마사태를 깔아뭉개려다 한 순간에 붕괴했다. 김영삼 정권은 집권 후반기에 무리하게 노동법 개정을 밀어붙이다 나락에 빠졌다.

한나라당 신주류의 MB노믹스 수정 시도는 이명박 정권에겐 보수를 잃는 배신이 아니라, 말 없는 다수의 지지를 회복하는 그나마 남은 활로(活路)일지 모른다. 현명하고 겸허한 판단을 기대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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