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이어 스웨덴에서도 변종으로 의심되는 병균에 의한 식중독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유럽 각국의 보건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감염원도 스페인산 유기농 오이로 추정될 뿐 아직 정확한 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있어 식중독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독일의 검역당국에 해당하는 로버트 코흐 연구소는 31일 '장출혈성 대장균'(EHEC)에 의한 식중독 사망자수가 15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스웨덴에서도 독일 여행을 다녀온 50대 여성이 EHEC에 감염돼 이날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독일 외 국가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약 2주 전 EHEC 식중독 사례가 독일 북부지역에서 처음 보고된 뒤 지금까지 확진 또는 의심환자는 약 1,200명에 이른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들 중 373명은 EHEC 식중독의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이 나타났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HUS는 EHEC 식중독에 걸린 뒤 신장기능 저하로 생기는 치명적 합병증으로 경련이나 혼수상태를 일으킨다.
현재까지 독일과 스웨덴 외 영국,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환자가 보고됐으며, 이들은 모두 최근 독일을 다녀왔거나 독일 여행자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오염원으로 의심되는 스페인산 오이가 체코를 거쳐 헝가리, 룩셈부르크 등지로 수출된 것으로 확인돼 감염 지역이 동유럽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EHEC에 감염되면 심한 복통과 설사, 신장손상 등의 증세를 보이는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 1996년 일본에서 발생해 유명해진 O157과 O111 등이 대표적이다. EHEC는 흔히 어린이들에게 세균성 질환을 일으키는데, 이번 독일발(發) EHEC는 성인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변종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독일 환자들에게선 O104:H4형 독소가 검출됐다.
문제는 EHEC의 감염 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산 오이에서 원인균이 발견됐다고 하지만 생산지가 감염원인지, 아니면 유통과정에서 발생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독일 북부 함부르크시의 보건과장인 코르넬리아 프뤼퍼 슈트록스는 이날 "조사결과, 당초 의심을 받았던 스페인산 오이가 이번 EHEC 발생의 주범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스페인은 국내 환자 발생이 없다는 점을 들어 감염원이 자국 농산물이라는 주장을 부인하며 유럽연합(EU)에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 밝혀 감염원을 둘러싼 논란도 예상된다. 그러나 유럽 각국은 스페인산 채소 수입 중단 및 물량 회수에 주력하고 있다.
●장출혈성 대장균
유럽에서 16명의 사망자를 낸 장출혈성 대장균(EHEC)은 당초 '슈퍼 박테리아'라고 알려졌지만 이와는 다르다.
EHEC는 주로 오염된 식품 섭취나 피부접촉 등을 통해 감염되는데 항생제를 투여해도 사망률이 높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반면 슈퍼 박테리아는 강한 항생제에도 내성(耐性)을 가져 항생제 치료가 아예 듣지 않는 세균을 말한다.
즉 독일발 EHEC는 슈퍼 박테리아라기보다는 변종으로 사망률이 높아진 '슈퍼 식중독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장균은 섭씨 75도 이상에서 3분간 가열하면 사멸되므로, 음식물을 조리해 먹으면 예방할 수 있다. 국내에선 지난 2000년 EHEC 감염증이 제1군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됐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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