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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이민과 개발' 발간/ 한중일 3국인의 만주 이주 역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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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이민과 개발' 발간/ 한중일 3국인의 만주 이주 역사 재조명

입력
2011.05.3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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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만주라고 알려진 중국 동북 지역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17세기 만주에서 건국한 청이 중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만주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국제 질서 변화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20세기 들어서는 러시아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의 만주 점령과 군벌 지배 시기를 거치면서 동북아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은 이주와 개발을 주제로 근대 만주의 역사를 재조명한 <이민과 개발: 한중일 삼국인의 만주 이주의 역사> 를 발간했다.

이 책은 19세기 이래 대규모로 진행된 만주 이전의 성격과 특징을 규명했다. 만주 이주는 유례를 찾기 힘든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이주였으며, 중국 내부의 경제적 빈곤이라는 내재적 요인과 제국주의 열강의 만주 침략이라는 외재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한중일 삼국민의 이주로 식민 지배에 따른 갈등과 민족 갈등이 혼재해 당시 만주는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 양상을 보였다.

19세기 조선인들의 만주 이주는 대부분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들이었다. 이는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이 일차적인 이유였다. 함경도 평안도 일대가 지형과 기후 때문에 논농사가 용이하지 못하다는 점, 1860년 북관 지방에서 대수재가 발생한 점이 이주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일본인들의 만주 이주 과정을 보면 일정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바로 중대한 역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인 인구나 이주 범위도 새로운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러일전쟁 때부터 많은 일본인이 남만주 일대로 와서 거주한 것 역시 일본의 정책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러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만주를 독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제국주의 전쟁으로서 당시 전쟁과 관련이 있는 많은 일본 상인이 일본군 점령지에 와서 거주했다. 일본인의 인구는 1931년(2,338명)부터 36년(1만1,103명) 사이 약 5배로 증가했다. 이 시기에 남ㆍ북만지구나 간도지구에 일본인의 새로운 이주지가 생기고, 또 원래 이주지의 일본인 인구가 대폭적으로 증가한 것이 이유다. 여기에는 일본군이 전 만주를 점령해 그 보호 하에 일본인의 발전에 많은 편리를 줬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이 책을 통해 만주에 대한 다양한 후속 연구가 촉발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사정원 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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