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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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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손목

입력
2011.05.3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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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 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

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한하운처럼 손가락 한 마디도 아니고

발가락 하나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어찌 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 한 자식이.

저 움푹한 눈망울을 닮은

엄마 아버지 아니 온 식구가, 아니

온 동네가 빗자루를 들고 쫓을 테지

손목 찾아오라고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찾아보세나 사람들아

붙여보세나 동무들아

고대로 못 붙여 보내면

고이 싸서 동무들 편에 들려 보내야지

들고 가서 이렇게 못 쓰게 되었으니

묻어버려야 쓰겠다고

걔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라도 해야지

장갑도 아니고

손목인데.

● 그의 손목엔 허공이 매달렸겠구나. 악수할 수 없는,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손사래 칠 수 없는, 기도하며 합장할 수 없는. 그 허공에 따듯한 눈빛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그의 손을 그려서라도 보냈어야 할 텐데. 먼 달을 보며 눈물 떨어뜨리다가, 없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받아 보았을 아, 스리랑카의 늙은 소년이여!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내 단견과 실수에 상처 입었을 시들을 생각한다. 시인한테 혼날 시들에게 미안하다. 시인이 시를 발표하며 문을 지워, 문밖으로 쫓겨날 수는 없음을 위안으로 삼아 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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