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세대 스마트강판으로 4조 시장 개척" 新연금술사들 구슬땀
좋은 품질의 철을 생산하는 기술이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통했을 만큼 철은 인간문명과 함께 발전해왔다. 세계 역사를 되짚어 보더라도 좋은 품질의 철을 얼마나 더 많이, 그리고 빨리 생산할 수 있느냐는 문명의 헤게모니를 쥐는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 같은 현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좋은 철로 강한 무기를 만든 국가나 문명이 세계를 제패했다면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좋은 품질의 철을 생산하는 국가가 글로벌 산업의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철을 판단하는 핵심적인 기준은 단단하면서도 잘 구부러지는 가공성, 그리고 부식되지 않는 내식성의 정도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지금도 최고 품질의 철 생산을 위해'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26일 둘러본 경기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 ㈜노루코일코팅 연구소는 이 전쟁에서 일급비밀 기술로 통하는 '스마트강판 표면처리제'를 개발하는 곳이다. 스마트강판은 아직 전세계 철판시장에서도 상업화가 되지 않은 제3세대 철판이다.
1세대 격인 일반철판이 철을 평평한 판(板)으로 단순 가공해 여러 산업현장에서 사용하기 편하게 만든 것이라면 2세대 격인 아연도금강판은 일반철판 표면에 아연을 입힌 것이다. 아연도금강판은 일반철판에 비해 부식이 늦게 진행되고 더 강하지만, 도금과정에서 폐수 등이 발생해 환경오염 문제를 발생시키는 단점을 낳았다. 여기에 아연 자체의 고갈도 급속히 진행되면서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스마트강판이다.
스마트강판은 도금과정에 아연만을 사용하지 않고 마그네슘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스마트강판은 2세대 아연도금강판과 비교해 생산과정에서 환경오염 및 아연 고갈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품질까지 좋다. 스마트강판 생산 시 도금과정 거친 후 마지막으로 강판 전체에 입히는 표면처리제는 스마트강판의 좋은 품질이 지속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최명희 ㈜노루코일코팅 기술연구소장은"일반철판이 아닌 도금강판에는 표면처리제를 사용하게 되는데, 아연도금강판과 스마트강판은 성질 자체가 달라 표면처리제도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며 "스마트강판용 표면처리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표면처리제를 포함한 스마트강판 개발의 중요성은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지식경제부는 2018년 약 40조원 매출을 달성해 세계시장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들을 골라 적극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6월 핵심소재 WPM(World Premier Materials) 사업군을 10개 선정하면서 이 중 하나로 스마트강판 관련 사업을 포함시켰다. 지경부 등은 스마트강판 사업이 성공할 경우 4조3,000억 원의 매출과 함께 6,3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사업은 포스코가 스마트강판 개발 및 생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노루페인트 자회사인 ㈜노루코일코팅이 페인트 기술 등의 노하우를 살려 표면처리제를 개발하는 등 산학연단체 27곳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지경부 관계자는"WPM 사업단 출범 및 투자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들이 모두 연합해 구매는 물론 향후 시장 개척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등 실질적인 상생협력 기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스마트강판은 상용화를 위해 아연도금강판에 비해 아연도금양은 절반으로 줄이고, 부식에 강한 정도인 내식성은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 소장은 "보통 5% 농도의 염수액(소금물)을 상온 35도 상태에서 일정 압력으로 계속 철판에 분사해 내식성 정도를 실험하는데, 일반철판은 단 몇 시간이면 부식이 시작되고 아연도금강판도 500시간 이후부터 부식이 발생한다"면서 "하지만 스마트강판은 1,000시간까지 견디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도금할 때 아연이 얼마나 쓰였는지를 판단하는 도금두께도 아연도금강판은 10 마이크로미터(㎛·1m의 100만분의 1) 수준이지만, 스마트 강판은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스마트 강판이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흑변 현상'이라는 걸림돌을 넘어서야만 한다. 마그네슘 자체에 습기가 많다 보니 아연도금강판보다 표면에 습기가 많이 차 스마트강판 표면 일부가 검은 빛을 띠면서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노루코일코팅 기술연구소는 현재 스마트강판의 장점인 내식성은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흑변 현상을 막을 수 있는 표면처리제 개발 연구에 한창이다. 이미 안정된 코팅층에 의한 습기 차단 등 흑변현상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까지는 개발했지만, 스마트강판의 목표에 맞는 완벽한 제품을 위해 연구 개발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최 소장은 "스마트강판이 상용화한다면 자동차 등 ?퓽?주재료로 하는 실생활 제품들의 수명이 눈에 띄게 길어질 것"이라며 "이런 점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향후 시장과 기술 선점에 대한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 국내 스마트강판 개발 현황
스마트 폰이 정보기술(IT) 시장을 석권하듯 철강업계에서도 스마트 강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업계 전망에 따르면 일단 본격 상용화가 시작되면 글로벌 수요가 2020년에는 120만톤, 2030년에는 1,000만톤에 이를 전망이다. 아연도금 강판 등 일반도금 강판을 대체하며 현재 1억3,000만톤(150조원)인 도금강판 시장에 일대 변혁이 불가피한 것이다.
2018년까지 고용창출 3만명, 매출 40조원 달성을 목표로 세계 최고수준의 10대 핵심소재 상용화 작업에 나선 정부와 민간이 11조원을 투자키로 한 WPM(World Premier Materials) 사업에 스마트 강판이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스마트 강판 연구의 메카는 포스코인데, 2013년까지 상용설비를 위한 시설을 지은 뒤 이후 르노삼성과 한국지엠 등 고객사와 협력해 제품 용도로 스마트강판을 본격 개발할 계획이다. 유럽의 아르셀로미탈, 티센크룹스틸사 등이 포스코의 스마트 강판과 유사한 기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로서는 포스코의 기술이 워낙 앞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WPM 사업단 출범은 현재 소재분야 세계 6위인 우리나라가 2018년 세계 4대 소재강국 진입을 향한 첫 걸음"이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이끌어 주는 모범적인 상생협력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부 지원금 중 65%는 중소기업 등에 집중된다.
포스코와 함께 스마트강판 상용화에 참여 중인 중소기업 중 대표 업체는 ㈜노루코일코팅이다. 포스코가 알맹이를 만든다면 이 회사는 알맹이를 지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즉 스마트 강판에 특화된 표면처리를 개발해 강판 품질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그에 따라 높은 상품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토록 하는 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1차 생산된 스마트강판 위에 화학적 표면처리를 하는데 쓰이는 표면처리제는 단순히 부식에 강한 내식성을 부여하는 역할 이외에도 페인트 등의 도료가 잘 부착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또 스마트강판을 가공할 때 좀 더 쉽게 작업이 이뤄지도록 윤활성도 부여한다. 스마트강판 생산공정 중 최종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노루코일코팅 최명희 기술연구소장은 "표면처리제를 계획대로 제때 개발할 수 있다면 초기에만 연간 230억원의 매출효과가 기대된다"며 "세계 시장에서 페인트 등이 아닌 표면처리 전문업체로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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