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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14> 5·16 군사정권과 안양촬영소, 그리고 신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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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14> 5·16 군사정권과 안양촬영소, 그리고 신필림

입력
2011.05.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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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6 군사정권이 들어서고선 하루는 좀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 사람들이 나를 만날 이유가 없는데, 왜 보자 그러나’하고 의아했다. “시청 뒤에 안가가 있는데 거기서 좀 만났으면 좋겠다”해서 갔더니, 김종필 씨와, 민간인으로써는 유일하게 혁명에 가담했던 장태화씨(나중에 서울신문사 사장이 됐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뒤에 유현목 감독, 신상옥 감독, 시나리오 작가 김강윤씨가 도착했다.

주로 김종필씨가 얘기했다. “5ㆍ16 군사혁명을 우리 국민들한테 곡해가 없도록, 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하는 얘기를 영화로 만들어 다오”라는 것이 말의 요지였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이 5ㆍ16 군사혁명을 왜 하게 되었는지 그 필연성과 당위성을 설명했다. “당시 장 면 정권이 나약하고 민족청년단을 영도하고 있던 이범석 장군이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기 때문에 군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금이 없어서 한국은행을 털어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 고 말을 이어갔다.

얘기를 듣고 난 뒤 신상옥 감독이나 유현목 감독 모두 반색인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열악한 제작환경 속에 겨우 버티며 영화를 하는 감독 입장에서 그 때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어 달라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난 좀 다르게 생각했다. 그 때가 7월 말쯤 인데 그때부터 제작 계획 세우고 시나리오 쓰면 빨리 촬영에 들어가야 11월 초가 되니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험에 의하면 기획 하고 시나리오 쓰고 촬영 준비를 하고 나면 11월 초가 됩니다. 그런데 연대병력이 서울로 진군해 온 5·16 군사혁명은 녹음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는 초여름이니 계절적으로 안 맞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니 장태화가 “아니 영화감독이 그런 것 좀 처리 못 하느냐?”며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감독이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어떻게 계절을 바꾸느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하며 맞받아쳤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신상옥 감독이 “된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돼?”하니 “안양촬영소를 빌려주면”이라고 말했다. “허…” 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손익계산 앞에선 유난히 순발력이 대단했던 신 감독다운 발상이고 발언이었다. 그 때 안양촬영소는 홍찬 씨가 만들었지만 자금이 부족해서 산업은행에 압류당해 있던 상태였다. “안양촬영소를 주면 거기에다가 시가지를 짓고 찍겠습니다.” 신 감독이 재빠르게 말했다.

그의 제안은 내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무모하고 낯두꺼운 거래였다. 선죽교를 피로 적실지언정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포은 정몽주의 후예답게 위태롭기 그지없이 바른 소리를 해댔다. “그게 분대 병력은 될 수 있겠네.” 나는 군에서 활동 해본 사람이지만 신 감독은 군대에 안 가봤으니 감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대 병력이 어떻게 탱크를 밀고 세트장 안으로 들어 오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될 걸 된다 그래라”라고 타박을 했다.

그러니 장태화씨가 유 감독을 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며 눈치를 봤다. 유 감독은 “글쎄요…·”하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유 감독, 안 되는 거는 안 된다 그래. 나중에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라고 말했다. 그러고선 “저는 안 됩니다. 이건 도저히 방법이 없습니다. 하시려면 내년에 합시다. 그 동안에 충분히 준비 기간을 가지고”라고 얘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때 뒤에 누군가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핏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 저쪽 문가에 보였다. 우리 대화 내용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정창화 감독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 한 마디하고 사라졌다. 그때서야 김종필 씨가 “그 얘기가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작품은 없던 것으로 합시다”하고 대화를 종결 지었다.

장태화씨부터 신 감독, 김강윤 작가까지도 ‘이 통에 좀 뭔가 하면 나름대로 도움이 될 거다’라고 생각하는데 난 ‘군사정권과 유착해서 따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반대하고 나서 일의 진행을 와해시켜버린 것이었다. 그들의 모든 원망은 내게로 집중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고 싶으면 당신들끼리 해. 내년에 할 수 있으니까 김종필씨한테 얘기 잘 해서 해봐라”하고 돌아와 버렸다.

내가 본 신 감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촬영감독 김학성씨 부인 최은희와 결국 결혼까지 했듯이 이 친구는 이 때도 호기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최은희를 앞세워 제작비 지원을 받아 신필림을 세웠고, 안양촬영소를 신필림의 것으로 만들었다.

최은희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밀어 붙일 때 조선영화동맹 동맹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이북으로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평양을 향해서 가다가 어느 지역에서인지 6사단이 다시 북진 하고 있을 때 포로가 됐다. 포로가 됐다는 소식을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 시절 들었는데, 그때 촬영감독 김학성 씨가 최은희 씨의 남편이었다. 김학성씨는 미국 통신사 UPI하고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에 이중으로 적을 두고 전선을 누비면서 뉴스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 부인이 6사단의 포로가 됐다 하니 최전방으로 최은희를 데리러 갔고 어찌어찌 어렵게 보증을 서서 대구로 그를 데려왔다. 대구에서 우리 촬영대에다가 최은희를 부탁하고 본인은 다시 전선으로 나갔다.

김학성씨가 안양 전투를 촬영할 때였다. 관악산에서 북한군들이 연합군과 국군에게 몰려서 저항을 하고 박격포 반격을 하는 중에 김학성씨는 중상을 당해 대구 제16육군 병원에 후송되었다. 그래서 나와 뉴스 카메라맨인 김덕진, 김강위, 김종한 등이 교대로 간병을 했다. 어느 날 이 분이 담배를 달라고 해서 드렸는데, 가슴구멍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군의관을 불러 “이 분을 꼭 살려야 되겠는데, 이거 가슴 구멍에서 연기가 나올 정도면 안 되지 않냐?”고 했다. 군의관은 “페니실린이 필요한데 하도 전상자가 많아서 페니실린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 몇몇이 돈을 각출 하여 대구 암시장에서 페니실린을 어렵게 구했다. 군의관에게 가져다 주며 “특별히 이 분을 좀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천신만고 끝에 김학성씨는 살아나게 되었지만, 그 동안 최은희는 남편에게 별로 찾아와 보지 않아 우리끼리 말이 많았다.

그 무렵 신 감독이 ‘코리아’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최은희를 꼭 쓰고 싶다”고 해서 그를 주연으로 기용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스캔들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김학성씨가 퇴원했고, 우리는 스캔들 얘기를 숨기느라 애썼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그가 신 감독을 쫓아가 때리는 등 한판 난리가 나게 되었다. 결국 폭행 소동이 벌어지는 바람에 두 사람의 관계는 더 공공연하게 돼버렸다. 동거를 시작했고, 공식적인 신상옥ㆍ최은희 커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학성씨는 신사적이고 존경 받는 분이었으며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이어서 형님처럼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분의 부인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화가 나서 신 감독을 몇 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은 적이 있다. 당시 신 감독은 굉장히 야심이 많았고, 최은희에 비해 무명에 가까웠으니 최은희를 자기 콤비로 해 놓으면 덕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먼저 최은희와 콤비가 된 뒤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에 최은희를 주연시켜서 승승장구 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가 당시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박정희 군사정권의 지원을 받았으니 얼마든지 그의 영향력은 커질 수 있었다. 군사정권에 적극적 협조를 했던 야심 찬 신 감독은 5ㆍ16 군사혁명과 박정희 정권이라는 순풍을 타고 좋은 작품을 만들게 된다. 권력과 손을 잡은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그리고 신필림은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역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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