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끝난 지 사흘 만인 30일 동해의 ‘군 통신선 차단’이라는 강경 공세를 펴고 나선 것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노린 ‘떠보기 전술’ 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적어도 외형적으로 강화된 양국 관계와 최근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 움직임 등을 배경 삼아 우리 정부를 일단 압박해서 반응을 지켜보겠다는 속셈일 수 있다.
이같은 의도는 이날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북한은 “전제조건 없이 대화와 협상으로 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는 우리의 아량 있는 제안”이라며 자신들의 대화 의지를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을 내년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과 ‘천안함 사과’ 요구를 비난하며 “북남 관계를 수습할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남북 경색의 책임을 남측에 돌렸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떠 넘기는 동시에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방중 이후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지 않는 데 대한 반발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8일“정부는 남북대화에 앞서 천안함ㆍ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원칙’을 고수할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을 간과하거나 비핵화 관련 논의가 빠진 대화는 한반도의 평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우리는 그런 대화는 거부하겠다”고 정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최근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 정일 정은 3부자를 사격 표적으로 삼은 데 북한이 적잖이 신경이 곤두섰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기 양주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표적사격용 영점표적지 상단에 김일성, 정일, 정은의 사진을 인쇄해 “쏘고 싶은 사람을 쏘라”는 훈련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이 강경 기조를 계속 이어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한이 “반공화국 대결책동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거족적인 전면공세”라고 주장하며 폐쇄한 동해 군 통신선과 통신연락소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사용하지 않았고 서해쪽 통신이 열려 있어 사실상 ‘남북 단절’의 의미가 없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에도 한쪽 채널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으로 출ㆍ입경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엄포용 조치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남북이 어떤 태도 변화를 보이느냐가 여전히 변수이지만 아직까지는 북중 정상회담, 대북 식량지원 재개 등 남북 경색이 풀릴 분위기가 조성돼 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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